[제4회 코스미안상 은상] 글 쓰는 사람들의 도덕성

김태식

 

요즈음에는 의학의 발달 덕분에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겼다. 하지만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았던 1970년대에도 30대에 세상을 뜬다는 것은 생을 빨리 마감하는 것이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집안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인해 요절한 어느 시인의 슬픈 얘기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주옥같은 작품 한 편이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도용되어 발표가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분의 작품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부 글 쓰는 분들의 도덕성에 의심이 갈 뿐이다. 

 

문단에서 표절과 작품의 도용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周知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있어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더욱 유감스러울 뿐이다.

 

1956년에 16세의 나이로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당선된 천재시인이 있었다. 부산 출신 김민부라는 시인이다. 다시 2년 후에 고교 3학년의 신분으로 다른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된다. 그 당시의 문단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으며 그를 하늘이 내린 천재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시와 시조는 물론이고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부산문화방송의 ‘자갈치 아지매’를 처음 만든 사람이고, 서울로 올라가 여러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체중이 100킬로그램을 넘나드는 분이 어디에서 그러한 감성이 나왔는지 의아할 뿐이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 부딪쳤던 그는 순수한 시를 쓰기보다는 원고료를 빨리 받을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부르는 가곡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로 시작하는 “기다리는 마음”의 시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일남 작곡가는 다시 갈 수 없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곡을 만들어 두었지만 적당한 노랫말이 없어 고민을 하다가‘가고파’의 가사를 쓴 노산 이은상 시인을 찾아갔다. 노산은 이러한 노랫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김민부 시인밖에 없다고 그를 추천했고 그는 이틀 만에 가사를 써 주었다고 전해진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소리 물새소리에 눈물 흘렸네 

 

어려운 단어 하나 쓰지 않고 쉽게 쓰여졌으며 실향민의 아픔을 대변해 준 이 노래는 노랫말을 쓴 사람이 떠났어도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국민가곡이 되어 있다.

 

한편 수년 전에 ‘창밖의 여자’라는 소설을 발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여류소설가가 있다. 그런데 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며, 그 소설 중에 삽입된 주옥같은‘창밖의 여자’라는 시의 작가 또한 김민부 시인이다. 그리고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불러 히트를 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그런데 이 시는 김민부 시인이 서울의 어느 방송국에 근무하면서 쓴 글이다. 이 분의 글을 좋아하던 배모라는 여인이 방송국의 사장비서실에 근무했다. 작가실에 자주 놀러 왔던 배모 작가는 김민부 시인이 정리하고 버리는 원고를 주워서 보관했다가 본인이 책을 낼 때 자신이 쓴 것처럼 한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 김민부 시인의 생존 시에 남편의 시를 타이핑해서 보관하고 있던 미망인이 우연히 보고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배모 작가는 본인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김민부 시인의 작품임을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작가의 도덕성이나 양심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은 베스트셀러작가일 뿐이라고 했다. 

 

고인의 미망인과 지인들이 배모 작가에게 사정을 했다. 저작권은 가지되 이 시의 실제작가는 김민부라는 것을 밝혀 달라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하니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뿐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작가 이전에 욕심을 버릴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켜 설 수는 없다. 그러나 입신양명立身揚名에만 눈이 어두운 작가들이 간혹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 서린다.

 

내가 참으로 존경하는 요절한 천재시인은 말이 없다. 아니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도용한 작가를 나무라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것 같기 때문이다.

 

[김태식]

 

작성 2022.10.10 10:25 수정 2022.10.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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