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코스미안상 은상] 대인기피증? 대인깊이증!

최문식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부끄럽지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세 명뿐이다. 그러나 그 세 명조차도 한 달에 한 번 만날까 말까다. 나는 주로 혼자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열정을 쏟는 대신,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소설도 쓰고, 게임도 만들고, 캠핑도 다니고, 외국어 공부도 한다. 그러다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면,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해 술 한잔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생각 없던 10대를 지나 무모했던 20대를 거쳐 만성피로의 30대로 접어들기까지,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갈수록 늘어나 400명 가까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인맥은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빌린 책이었다. 펼치니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고, 읽기에는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책들은 결국 방치 끝에 반납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내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편식하지 말라고 가르칠 나이에, 사람을 가리고 있다. 같은 씨, 같은 밭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아래의 친동생은 전혀 딴판이다. MBTI 검사 결과가 INTJ인 나와는 달리 ENFP인 동생은 친구가 많고 약속이 많다. 주말이면 밖에 나가서 술에 떡이 되도록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삶의 낙인 것처럼 산다.

 

동생은 이런 나를 보며 대인기피증이라고 놀린다. 대인기피증이라는 병명이 사회 부적응자 같아서 부정하고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것도 같다. 새로운 사람과 사귄다든지, 불편한 모임에 나간다든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어 대개 혼자 있고, 어울리더라도 익숙하고 편한 사람만 찾는다. 지금 나는 가지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됐는데, 소시지만 골라 먹는 초등학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골고루 먹지 않으면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도 알고 있다. 알기 때문에, 입에 쓴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 전혀 손대지 않던 버섯, 미역 줄거리도 서른 넘어서부터는 먹었다.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변태라면 모를까.

 

편식이 몸을 아프게 한다면, 좁은 인간관계는 마음이 감기들게 한다. 그래서 난 한여름에도 감기를 달고 산다. 물론 나는 변태도 아니고, 아픈 것도 싫다. 천하장사도 고뿔엔 몸져눕듯, 외로움과 울적함에 서러워지는 밤이면, 술김에 모임이라도 나가볼까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친다. 모임에 나가 끝이 좋았던 적이 없는 까닭이다.

 

내 첫 모임은 갓 취업한 사회초년생 때였다. 그때의 나는 대학생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여파로 이별 후유증을 제대로 겪고 있을 때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주변의 조언 아닌 조언에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려 끊임없이 뭔가를 했다. 일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남의 일도 도맡아 했고, 퇴근 후엔 친구들과 술독에 빠졌고, 주말이면 엄마 따라 기독교에 빠졌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까 폭음에 오줌 색이 콜라처럼 변하고 새벽 기도에 다크서클이 생겼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알아본 게 모임이었다. 스마트폰 앱만 깔면 다양한 모임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이틀을 망설이던 난 맛집 탐방 모임에 가입했다.

 

첫 오프라인 모임 때 느낀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했다. 다들 직장인이라 쪼들리지도 않았고, 나와는 달리 굉장히 사교적이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는 모임의 취지도 좋았다. 번개 칠 때마다 참석해서 어울리곤 했는데, 좀 지나고 보니 결국은 술자리였다.

 

술을 마시면 입이 가벼워지고 실수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술자리 중 갑자기 울며 뛰쳐나가는 사람, 그걸 또 잡으러 가는 사람을 보며, 먼저 있던 사람들 간의 얽힌 관계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형들이 좋아서 모임에 나갔는데 한 살 많은 누나 한 명이 내게 호감을 보였다. 미안하게도 그분은 전혀 내 타입이 아니었기에 거절을 했는데, 한 달 뒤인가? 모임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형이랑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렸다. 그걸 또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한 커플이 깨지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모임은 그날로 정리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수없이 반복됐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 갈등, 배신, 상처, 외로움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었다. 아, 나와 맞는 사람이 진짜 드물구나. 그래서 인연은 소중한 거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구나.

 

인간관계는 다이어트처럼 평생의 숙제이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이 들수록 친구 사귀기는 어렵고, 있는 사람은 떨어져 나가고, 저장된 연락처는 많지만 맘 편히 연락할 사람은 없고, 집에서 혼술이라도 하고 있으면 사무치는 외로움에 아무라도 어울리고 싶고, 그러다 또 사람한테 지치고.

 

그래서 나는 잡다한 관계보단 소중한 인연에 집중하기로 했다. 동생이 나를 대인기피증이라 놀릴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만, 내가 앓고 있는 병명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대인기피증이 아니라 깊이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대인깊이증이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사라진 것에 연연하지 않는 대인깊이증이다.

 

[최문식]

mondschein01@naver.com

 

작성 2022.10.20 09:56 수정 2022.10.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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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