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무위도식(無爲徒食)

고석근

 

 가난은 사람을 현명하게도 처절하게도 만든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언젠가 아내에게 인도인들의 말년의 삶에 대해 애기했다. “자기야, 인도 남자들은 50대 중반이 되면 다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대. 그리고는 다시 숲에서 나와 거지로 세상을 떠돌다 죽는대.”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아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다하다 거지까지 하려고?”

 

나는 항상 ‘거지의 삶이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원시인들의 삶을 보자. 그들은 농경을 하기 전까지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산과 들에 먹거리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항상 축제를 하고 놀이를 했다. 에덴동산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 먹거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놀던 인간이 일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래동화 ‘견우와 직녀’를 생각해 본다. 견우는 소를 길러야 하고 직녀는 베를 짜야 하는데,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자, 수 만년 동안 몸에 배인 ‘무위도식’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게 되었다. 

 

무위도식, 일하지 아니하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것. 대개 나쁜 뜻으로 쓰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닌가? 그 말을 좋은 말로 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며 즐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무위도식은 대노한 옥황상제가 그들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 끝에 멀리 떨어져 살게 해서야 끝이 났다.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올라가 다리(오작교)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그날이 칠월칠석이다.

 

인간에게 놀이와 일이 하나가 될 수 없을까?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거는 인간은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라고 정의했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유희라면, 강제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나는 오랫동안 ‘놀이와 일의 일치’를 찾아왔다.

 

나는 오랜 방황 끝에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에서 ‘놀이와 일의 하나 됨’을 찾아냈다. 모든 사람들에게 놀이와 일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만 년의 원시사회와 지금도 원시생활을 하는 소수민족들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인류의 ‘오래된 미래’를. 최소한의 의식주로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소수민족들을 보자! 그들의 얼굴은 얼마나 해맑은가!

 

물질적 풍요에 짓눌려 신음하며 살아가는 현대문명인들의 굳은 얼굴과 대비되지 않는가?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서푼짜리 오페라’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신사 여러분, 당신들은 우리가 정직하게 살 수 있고 죄와 악행은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치죠.  

 우선은 먹을 것을 주셔야죠. 

 당신들이 제 아무리 달리 표현한다 해도 

 우선은 먹는 것, 그 다음이 도덕이죠.

 큼직한 빵 덩이에서 자기 몫을 잘라낼 수 있어야죠. 

〔......〕 

 인간은 무엇으로 사나요?

 늘 사람들을 괴롭히고, 옷을 벗기고, 공격하고, 목 조르고, 처먹으면서 살지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송두리째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노상강도 조직의 우두머리 맥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서 하는 얘기다. 감옥은 한 사회를 송두리째 보여준다. 눈부신 산업화의 결과 이제 산과 들에는 먹거리가 다 사라져버렸다. 그러면 산업화의 열매를 갖게 된 사람들이 산과 들에 있던 먹거리들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이다. 사실 인간에게는 많은 재물이 필요하지 않다.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안빈낙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만 마련되면 될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송두리째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아닌가? 만일 모두 일벌레가 되어 지구를 갉아먹었다면, 지구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려고 모아둔 돈이 

 새 주인을 찾아 달아났다 

〔......〕

 이왕이면 나보다도 더 요긴한 이에게 갔으면 좋겠다고 

 내심 빌다가 

 차라리 돈 많은 손이 거두기를 바랐다 

 행여 그 뜻밖의 유혹이 가난한 이들의 눈에 띄어 

 도둑처럼 마음 졸이다가 눈 질끈 감고 말 때 

 가뜩이나 누추한 행색에 

 어렵사리 지켜온 마음마저 누추해질 것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내 죄가 너무 크다 

 

 -김규성, <잃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부분 

 

 

가난한 사람들은 ‘누추한 행색’이나 ‘어렵사리 지켜온 마음’이 있다. 이것은 가난하지 않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 최고의 고결한 마음이다.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 시인은 가난하지 않지만, ‘어렵사리 지켜온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2.10.20 10:41 수정 2022.10.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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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