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란 요리의 재료는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으로 우선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의 신선한 재료를 일컫는다. 이후 인(仁),의(義 ).예(禮),지(智)의 사덕으로 숙성되었다. 칠정(七情)에는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이 또한 요리의 재료다. 이 영양가에 대해서 우리가 맛보고자 하는 것은 맹자의 도덕적 가치를 현실의 입맛으로 대입하여 삶에 감칠맛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여 체계화한 요리를 성리학이라는 모듬요리라 하겠다.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필수 맛에서 부터 문명의 모든 시발점이라 말할 수 있는 철학의 개념으로 입맛을 돋우는 것이 명나라 때 주희가 집대성한 요리를 성리학이라 이른다. 그는 실천도덕과 인격과 학문을 역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기에 조선 통치의 이념이 되어 길재, 정도전, 권근, 김종직 이후 이이, 이황에 이르러 성리학의 맛깔나는 체계를 차려냈다.
성리학은 이황의 이(理)와 기(氣)의 명제가 각기 다른 감정에서 나온다고 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란 요리를 주로하며 기대승과 벌어지는 논변의 맛을 서로 요리 경연으로 성리학 맛의 발전에 지대한 향신료를 뿌려 놓았다.
이황이 주장하는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그 맛이 나오며 칠정은 기(氣)에서 맛이 스민다고 한다. 이 두가지 맛을 사람은 함께 지니고 있으며 마음은 이(理)에서 나오는 것과 기(氣)에서 나오는 것으로 구분지어 요리를 했다. 이런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차려냈다. 반면 기대승은 이기이원론을 반대하며 ‘사단칠정(四端七情)이 모두 정(情)이다’ 라고 다른 요리를 차려 놓았다. 이후 이이에 이르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대척되는 맛의 논리를 폈는데 그것이 바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라는 성찬이다.
이황이 주장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맛깔나는 요리를 살펴보면 가령 이런 맛이다.
사람의 감정은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분류되는데 사단(四端)에서 우러나오는 감정과 칠정(七情)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그 맛이 다른 감정에서 우러나는 맛이라고 주장한다.
예를들어 친한 친구에게 얼마간의 돈을 빌려 주었다면 빌려준 친구의 마음과 빌린 친구의 마음은 처음보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빌린 친구는 급전에 마음을 졸이다가 그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빌린 친구에게는 부담을 지는 마음의 변화이다. 이것은 사단(四端)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산듯한 맛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나중에 못 갚게 되는 상황에서는 친구를 피하게 되고 친구와 소원해지는 감정이 칠정(七情)의 구(懼)의 쓴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빌려준 친구의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아마도 그 친한 친구를 믿어도 되는건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 마음이다. 이것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빌려줄 때의 마음은 사단(四端)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신맛이라면 걱정이 되는 마음은 칠정의 욕(慾)의 짠맛에 해당하는 욕심일 것이다. 이런 감정은 각기 다른 감정에서 우러난다고 보는 것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는 성대한 만찬이다.
그렇다면 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은 어떤 맛이지 한번 느껴 보기로 하자. 돈을 빌려준 친구의 감정의 변화는 같은 맥락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말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신맛과 욕(慾)의 짠맛은 ‘정(情)이란 단맛으로 같다‘이다.
‘혀의 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맛이다‘라고 이이가 요리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다. 우리의 삶에는 성리학의 기본 요소를 늘 감정의 재료로 요리해서 먹고산다. 그 세부 내용이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는 지극히 사람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표현의 맛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그 감정의 해석을 학문을 통해 설명해 놓은 요리가 바로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라는 걸죽한 성찬의 맛이라 느껴진다.그렇다면 여기서 기(氣)와 이(理)에 대해 좀 더 깊은 맛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우선 기(氣)라는 것은 ‘세상의 기운’이라는 맛이다. 기운(氣運)이라면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고 행운이나 또 보이지 않은 힘의 작용이나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믿는 힘의 모든 것을 기(氣)라는 일종의 고도의 집약적인 맛이라고 표현 할 수있을 것이다. 반면 이(理)라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느끼는 맛이다. 진리(眞理)가 해당될 것이고 과학적이거나 변치 않은 법칙이나 규칙 혹은 윤리거나 자연의 섭리등 자연의 작용이 모두 이(理)로 집약되는 맛이라고 해도 지나친 맛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고도의 문명을 요리하여 발전시켜왔다. 그 기본 삶의 기초가 되는 학문을 꾸준히 닦고 미래를 위해 문명의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는 또 많은 것을 잃고 편리함 대신 많은 희생을 강요 받았다. 이것을 적절히 절충하고 배양해서 공멸(共滅)이 아닌 공존(共存)의 지혜를 발휘하여 깊고 넓게 미래의 지향점을 찾아 가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요리의 과제로 남은 것이다.
사단(四端)으로 하나를 얻고 두개를 잃는다면 멸망으로 가는 요리인 반면 칠정(七情)으로 두개를 얻고 하나를 지킨다면 긍정적 발전의 기반의 요리가 될 것이다. 우리네 삶이란 것이 편리함을 추구하되 파괴적이지 않아야 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평화로운 입맛이 살아날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요리다. 이것을 담보로 돈을 빌림으로 해서 평화롭던 마음이 변화의 욕구(欲)로 요동치기 시작하여 입맛이 쓴 것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줄 때는 돌려 받을 생각을 않는게 좋다. 그러면 입맛이 달다. ‘돌려받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당신에게 돈 빌려 줄 친구가 얼마나 될까? 돈 빌리는 마음에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이란 입맛이 돌고 돈다. 빌릴 마음과 빌려줄 마음의 입맛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요리를 하고 또 그 맛으로 먹고 산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이란 맛있는 요리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맛깔나게 아웅다웅 요리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찬이 아닐까.
[최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