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이 세상을 모두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당신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영화 ‘울프토템’을 재미있게 보았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인 1969년, 베이징의 젊은 학생 첸 젠은 유목민 부족을 가르치기 위해 내몽고로 보내진다. 그는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토템인 늑대에게 매료된다. 그는 늑대 새끼를 키우게 된다.
하지만, 중국의 정부는 그 지역의 늑대를 모두 제거하기로 한다. 늑대가 사라지면 토끼 같은 작은 짐승들이 늘어난다. 갑자기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작은 야생 짐승들은 초원의 풀을 다 갉아 먹어버리게 된다.
초원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유목민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중앙 정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늑대를 신으로 섬겼던 것이다. 토템인 늑대가 건재해야 초원이 건재하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았던 것이다.
이런 지혜들이 하나로 응축된 게 원시인들의 토템이다. 가장 강력한 중심의 힘이 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문명인들은 실용적으로 이해하겠지만, 원시인들은 온 마음으로 경건하게 받아들였다.
원시인들의 신화를 보면 그들이 주로 먹는 동물과는 항상 화해를 했다. 사냥을 나갈 때는 그 동물의 신에게 허락을 받았다.
문명인들은 ‘허락이 가능해?’ ‘동물의 신은 있는 거야?’ ‘어떻게 인간이 동물의 신을 만난다는 거야?’하고 의심을 하겠지만, 그건 신통력을 잃어버린 문명인들의 좁은 소견이다.
원시인들의 샤먼은 인간의 무의식, 영혼이 깨어난 사람이다. 영혼은 천지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
동물의 신에게 허락을 받았기에 원시인들의 사냥은 경건한 의례였다. 일정 수의 동물만 사냥하고 동물의 살을 먹고는 뼈와 가죽을 남겨 다시 영혼을 얻어 부활하기를 기원했다.
원시인들의 삶이 바로 안분지족이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이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 가족의 반지하방에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고 쓰여 있는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그들의 가훈인 안분지족은 진정한 그들의 꿈일까? 자포자기를 합리화하는 자기최면일 것이다. 은퇴하고서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솝 우화의 ‘신포도’ 같다.
닿을 수 없는 곳에 포도가 달려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어 포기하고서는 자신을 위로하는 말. 현대문명사회는 무한한 물질 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분수를 지키라고 하지 않는다.
“분수를 모르고 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돈이 엄청나게 많아야 가능하다. 그래서 포기하고서 ‘루저’인 자신이 싫어 안분지족을 좌우명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정신승리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원시 생활하는 사람들은 분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잘 알고 있었기에, 신화를 통해 그들은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현대문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평생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살아가야 할까? 자신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 과거에는 이것을 신화, 종교가 담당했지만, 지금은 예술이 그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아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죽어서 지옥에 갈 줄 알면서도 파우스트는 외쳤다. “시간이여, 멈춰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 말을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어도 좋은 아름다움이 가슴에서 솟아나면,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씨앗 속에는
삶이 깃들여 있듯
그분神은
그대 안에 있고 내 안에도 있다
수만 개의 태양이 빛나고
푸른 바다가 하늘 속으로 번져간다
삶의 열熱은 평온을 되찾고
모든 얼룩은 씻겨버린다
내가 이 세계의 중앙에
앉아 있을 때
- 까비르, <씨앗 속에는> 부분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들에게는 변두리는 없었다. 그들은 ‘모든 씨앗 속에는/ 삶이 깃들여 있듯’ 삼라만상이 다 영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안의 영혼만 깨어나면, 우리의 매 순간은 ‘내가 이 세계의 중앙에/ 앉아 있을 때’가 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