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가을 두타산(頭陀山)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다

여계봉 선임기자

 

두타(頭陀)는 버리다, 씻다, 닦다 등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로서 두타행(頭陀行)이라 하면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뜻한다. 따라서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이요 두타행이다. 두타산 오르는 산길은 세속을 벗어나 정진의 길을 떠나는 두타행이다. 어찌 허투루 걸을 수 있는 만만한 길이겠는가?

 

두타산의 랜드마크 베틀바위

 

오늘 산행은 두타산 공원사무소를 출발하여 베틀바위 산성길을 따라 베틀바위, 수도골과 마천루 전망대를 지나 쌍폭포와 용추폭포까지 간 후 무릉계곡을 따라 삼화사와 무릉반석을 거쳐 공원사무소로 원점회귀 하는 코스(8km, 4시간)로 진행한다. 

 

공원사무소를 지나 신선교를 건너면 들머리인 베틀바위 산성길 입구가 나온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만만치 않은 경사길이 이어진다. 가을 찬비에 주저앉은 이파리들이 깃털처럼 부드러운 융단을 만들어주어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낙엽을 밟으며 더할 수 없는 편안함과 고요에 감격하면서 산 오름을 시작한다. 

 

두타산 가을 숲에 들면 사람도 단풍이 된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그재그로 돌아서 한참을 오르니 예부터 삼화사 승려들이 좌선했던 삼공암 바위에 도착한다. 바위 위에 올라서니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의 북평 바다가 두타의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협곡 너머로 보이는 관음폭포

 

삼공암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급경사의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베틀바위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서 동쪽으로 몸을 돌리자 기기묘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뾰족뾰족한 암봉이 사선으로 이어진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베틀바위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천상의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아 두타산 골짜기에서 삼베를 짜며 죄를 뉘우친 뒤 승천했다는 전설이다. 또 하나는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의 박달재를 지나면 옛날에 삼을 많이 재배했던 정선 임계면과 삼척 하장면이 나오는데, 농한기 때 이 지역의 아낙들이 옷감을 이고 동해 북평장으로 오면서 이 바위를 보고 베틀을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중국 장가계의 비경이 연상되는 베틀바위 

 

인파로 북적이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미륵바위로 오른 후 비교적 완만한 평지의 내리막 숲길을 따라가면 길섶에는 꽃이 진 산수국과 백두대간에서 보기 힘들다는 회양목 군락이 보인다. 길가에는 복원한 숯 가마터도 보이고 주변에 자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이 험한 산에서 억척스럽게 살다간 선대 화전민들의 고단했던 삶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며온다.

 

가느다란 실비가 숲속 산길에 수채물감처럼 흩날리니 초록빛 하늘이 으슴푸레하다. 가을 복판에 내리는 비. 우의를 입고 단풍이 물든 가을 산을 타는,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정취에 젖는다. 산길은 부드럽게, 혹은 가파르게, 혹은 휘며 꺾이며 줄기차게 이어진다. 

 

등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쌍둥이처럼 마주 서 있는 두타산은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그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베틀바위와 박달령 입구까지의 구간을 잇는 산길을 따라 두타산과 청옥산의 굵직한 산줄기와 기암절벽이 쉼 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운무가 서서히 걷히는 두타산과 청옥산의 백두대간 마루금

 

이윽고 산성 12폭포에 도착한다. 열두 번 꺾이는 폭포와 큼직한 잿빛 바위, 바위 틈틈이 자란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거대한 한 폭의 수묵화다. 바라보는 건너편 협곡의 풍광이 기막히다. 단풍잎이 떨어져 폭포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린다. 가랑비에 젖으니 붉은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은 서로 약속이나 하듯 폭포수가 흐르는 너럭바위에 앉아 주위 경관을 즐긴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성 12폭포 

 

수도골로 가는 등로 오른쪽 절벽 아래에는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해로 흐르는 무릉계(武陵溪)가 있다. 맑은 계류를 따라 펼쳐진 널따란 반석과 조물주의 작품인 양 기이한 모양으로 우뚝 선 바위들과 폭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봉우리에 구름을 걸친 기암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산세를 꾸리고 있다. 구부러지고 휘어진 소나무의 줄기와 가지에는 만고풍상이 걸려 있는 듯하다. 

 

두타와 청옥을 가르는 무릉계. 아래는 백척간두의 절벽이다.

 

수도골에 들어서니 골짜기 전체에 냉기가 흐른다. 석간수에 들러 차가운 약수로 몸의 열기를 삭히고 걸음을 계속하니 드디어 협곡 마천루에 들어선다. 무릉계곡 신선봉 맞은편 박달령 일원에 자리 잡은 마천루는 신선이 머무를 것만 같은 암릉과 기암절벽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담은 천하 비경이지만 절벽과 거친 암릉이 많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다. 이제 500m 길이의 데크와 계단, 전망대 등이 설치되어 협곡을 오르내리며 주위의 비경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파른 절벽 끝에 새집처럼 달린 마천루 전망대 

 

마천루 맞은편으로 두타산과 청옥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신선봉과 거대한 자연 암벽인 병풍바위, 용맹스러운 장군의 얼굴을 닮은 장군바위가 보이고, 비가 주춤하니 용추폭포와 쌍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마천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협곡에서 바라본 웅장한 바위 형상이 대도시에 운집한 고층빌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정은 그동안 운무에 쌓인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청옥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마천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병풍바위. 그 너머로 백두대간이 좌에서 우로 달린다. 

 

전망대에서 절벽에 붙은 아찔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박달계곡으로 내려선다. 선녀탕을 지나니 깊은 계곡에 반향된 청량한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른다. 무릉계곡 최상류에 있는 쌍폭포는 매끄러운 암반 사이로 힘찬 물줄기를 흘려보내며 청량감을 더한다. 쌍폭포 위에 있는 용추폭포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을 지닌 폭포로 상탕, 중탕은 옹기항아리 같은 형태로, 하탕은 진옥색의 큰 용소로 이뤄져 있다. 폭포 입구에는 어느 묵객이 새겨놓은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대형석각이, 폭포 앞 암반에는 부사 유한준이 쓴 ‘용추(龍湫)’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용추폭포 철제계단에 오르면 계곡 맞은편으로 우람한 발바닥 바위와 마천루의 바위 능선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쌍폭포. 왼쪽은 박달령에서 오른쪽은 청옥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다. 

 

용추폭포에 올라서서 맞은편 두타산을 바라본다. 두타는 울툴불퉁하나 날렵한 골산(骨山)이고, 청옥은 완만하여 듬직한 육산(肉山)이다. 하기야 수행자가 가는 고행의 길이 완만할 리 없고, 극락 세상을 상징하는 산이 울퉁불퉁할 리 없다. 두타는 두타답고 청옥은 청옥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두타의 길은 청옥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선녀탕을 지나 무릉계로 내려서면 산길이 유순해진다. 장군봉과 병풍바위를 지나면 두타와 청옥이 만든 그 계곡에 자리 잡은 천년사찰 삼화사(三和寺)가 있다. 무릉계의 정신을 지탱해 온 절집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는데 고려 때 삼화사로 개칭했다.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이다. 현재는 삼화사와 관음암, 천은사만 남아 있지만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중대사, 상원사, 대성암 등 십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절집이 산속 곳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한다. 맑고 고즈넉한 암자를 나서는데 바람이 귓가에 스치듯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욕심, 탐욕, 이기심을 버려라'.

 

선종의 종풍을 지닌 유서 깊은 사찰, 삼화사

 

바위 세상을 빠져나오니 이제 물의 세상이다. 무릉계곡의 무릉(武陵)은 중국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했다. 세상과 따로 떨어져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 같은 곳이라는 의미다. 실제 무릉계곡은 입구 호암소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용추폭포까지 약 4㎞ 정도 된다. 

 

너른 바위에 물이 완만하게 흐르는 무릉반석(武陵磐石)은 천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암반이다. 반석 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언제나 맑고, 조선의 4대 명필로 꼽히는 양사언과 매월당 김시습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히 양사언이 선경에 반해 무릉반석 위에 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라는 글귀는 세월이 흐르면서 마모가 심해지자 따로 새겨서 금란정 옆에 만들어 두었다.

 

동해 3경의 하나인 무릉반석

 

함께 산행했던 친구들과 함께 잠시 양사언이 되어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 솟는 바위,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골짜기’에서 신발 끈을 풀고 단풍잎 떠내려가는 옥류에 발을 담근다.

 

가랑비 멈추니 하늘에서 내려온 운무가 다가와 바위를, 나무를, 사람을, 그리고 온 산을 껴안는다. 이곳이 선계의 입구인가. 극락 가는 길이 여기서 한 달음인가. 동무들은 두타동천(頭陀洞天)에서 잠시 신선이 된다. 

 

두타행 끝에서 얻은 즐거움

이것이 바로 우화등선(羽化登仙) 아니든가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yeogb@naver.com

작성 2022.11.07 11:15 수정 2022.11.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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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