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은 본래 키가 작았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사람들을 낮추어 부를 때 ‘왜X’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왜X이라고 할 때 쓰는‘왜’자가 바로 키 작을‘왜’矮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른 이름으로 표시할 때 왜국倭國이라고도 하니 발음은 같이‘왜’로 하는데 뜻은 다르다.
이렇게 키가 작았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키가 커진 이유를 알려면 일본의 근대사를 조금 들춰야 한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아시다시피 중국의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조선총독부 초대 조선총감을 지냈고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완성했으며 일본 근대헌법의 기틀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지폐 천 원권에도 실렸던 인물이다.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만인의 적이지만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숭상하는 천재이기도 하다.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세계를 집어삼키겠다는 망상을 가졌던 일본으로서는 미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검문소가 있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과는 달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1900년대 초에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미국에 보내서 동정을 살피고 오라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다녀오자 총리가 물었다.
“미국은 어떻던가요?”
“미국하고는 절대로 전쟁을 하면 안 됩니다. 키도 크고 우리는 어깨에 걸면 땅에 닿을 정도의 소총을 그냥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정도이니 전쟁을 해도 집니다.”라고 이토가 말했다.
하지만 약 40년 후에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거역하고 전쟁에 미쳐있던 도조총리는 결국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세계 최초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을 했다.
미국을 다녀온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인들이 키가 큰 이유를 식생활에서 찾았다. 미국 사람들은 우유와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고 육고기를 많이 먹더라고 보고를 했다. 그때까지 육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채식과 생선 위주의 일본 식단이 우유와 육고기 섭취로 바뀌게 되었다.
일본 여성들은 덩치가 큰 서양인 남성은 물론이고 키가 큰 다른 나라의 동양인과 결혼을 많이 해서 서양 체구의 2세를 태어나게 한다. 따라서 일본인의 식생활 개선에서 신장이 점차 커지게 되었고 일본에는 유달리 혼혈이 많고 특별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대표적인 혼혈인 가운데 일본프로야구 스타 3명만 뽑아 보자. 일본 야구의 전설적인 홈런왕‘왕정치’王貞治(일본명:오 사다하루)는 아버지가 중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일본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뉴욕양키스 투수로 활약했던‘이라부’는 그의 아버지가 백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이라부는 유달리 그의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체격이 아주 컸다.
그리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키가 크고 잘 생긴 일본여성의 우상인‘다르빗슈’는 아버지가 이란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그래서 요즈음 일본 젊은이들의 평균 신장이 많이 커졌다.
한 편 일본에는 ‘쇼와의 날’이라고 해서 하루를 쉰다. 그럼 이 날은 어떻게 정해 졌을까? 먼저 일본은 천황제를 택하고 있으며 천황은 대를 이어 천황이 되고 천황에 따라 연호가 바뀐다. 현재의 천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지금의 천황은 ‘나루히토’이고 연호를‘레이와’라고 쓴다. 따라서 일본은 서기를 쓰지 않고‘레이와 몇 년’이렇게 쓰는 것이다.
올해가 이 사람이 천황이 된 지 4년째이니 올해는‘레이와 4년’이다. 서기 2019년부터 현재까지 천황을 하고 있다. 현재 천황의 할아버지가‘히로히토’인데 연호를‘쇼와’라고 썼다. 그리고 쇼와의 아버지이고 현재 천황의 증조 할아버지가‘요시히토’천황인데‘다이쇼’라는 연호를 썼다. 그런데‘요시히토’천황이 1926년에 젊은 나이로 죽자 아들인‘히로히토’천황이 25살의 청년으로 천황을 이어 받아 1989년까지 63년간 재위하게 된다.
연대를 보면 금세 떠오르겠지만 히로히토(쇼와)가 재임하는 동안 1926년에서 1989년은 국제적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는 격동의 시기였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어려움에 처한 치욕의 세월이기도 하다. 전쟁에 패하고 항복한 그들은 미주리함에서 파이프담배를 물고 선글라스를 낀 맥아더장군의 호출을 받은 일본외무부장관을 비롯한 전범 장군들이 그의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다. 전승국의 대표인 행정수반이 아닌 점령군의 장군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으니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우고 싶은 슬픈 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이기도 하다. 강점기에는 조선인들을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했으며 조용했던 한반도를 시끄럽게 만든 남북분단 나아가 한국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던 을사늑약이 진행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히로히토가 천황으로 있던 후반부의 일본국내 사정으로 보면 일본이 세계 제2위의 선진공업국으로 근대화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히로히토(쇼와)천황을 존경하고 신적인 존재로 일본 국민들의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따라서 쇼와천황의 생일이기도 한 4월 29일을‘쇼와의 날’로 정했고 하루를 쉬면서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처음에는‘히로히토 천황 탄생일’로 했다가 공산주의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해서‘쇼와의 날’로 고친 것이다.
일본이 하루를 쉬면서 조국 번영을 기리는 날인‘쇼와의 날’일본의 부침浮沈이 거듭되었던 기간에 우리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는가 하면 잃어버렸던 조국을 되찾기 위해 수 많은 순국열사들이 해외에서 힘든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조국의 허리는 두 동강이 난 채로 동족 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전쟁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내가 일본에서 근무하는 동안‘쇼와의 날’에 일본인들은 골든 위크라는 연휴가 일주일간 이어져서 즐겁게 쉰다. 하지만 나는 즐겁지 않은 휴일에 쉬지 않고 출근을 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