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정가(正歌) ‘이순신의 노래 전국 순회공연’을 꿈꾸다

하진형

 

무대에 불이 꺼지고 관중석에 불이 하나씩 들어올 때 우리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러대었다. 어떤 이는 우리 음악에 어울리지 않게 ‘앵콜~’을 외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기적이었다. 대부분의 문화적인 부분에서 서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방에서, 그것도 이름도 생소한 정가(正歌)를 공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초연(初演)임에도 빈자리 없이 만원사례로 이어졌으니 누구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이처럼 생각할수록 머리가 갸우뚱거려졌다. 물론 나의 지식적 깊이가 얕아서이겠지만 정가란 말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고 더군다나 이순신장군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충주(忠州)에서 ‘이순신의 노래’ 공연을 한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문화의 주변 지인 지방(?)에서 공연된 그들의 춤사위에는 당시의 한(恨)과 혼(魂)이 오롯이 깃들어 있었고, 오르내리는 소리에는 승화된 한과 혼을 미래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조금은 투박하고 서툴러 보였지만 열정은 그것을 덮고도 남았다.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연기가 도입부의 긴장을 녹여주었고 긴 여정의 맥락을 세련되게 소화시킬 때는 전문지식이 없는 관객들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서양음악에 익숙해 있는 작금에서 우리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였고 더군다나 지금은 북녘땅으로 멀어진 황해도 지역의 ‘서도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고마움은 더해졌고, 후일 그것이 전수된다는 말을 듣고는 가슴속이 울려 왔다. 

 

그들의 몸짓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음악하면 서양음악을 떠올리고, 무대예술 공연하면 서양 오페라를 생각하게 하는 지금의 문화적 상황에서 그들이 서울도 아닌 지역의 작은 무대에서 외롭고 투박하게 시작한 울림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보다 훨씬 더 높이 쏘아 올려졌다.’ 그들이 불모지 문화를 상대로 펼친 초연 그 자체만으로 이미 우리문화를 지키고 남았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임진왜란 시 육전(陸戰)이 연전연패(連戰連敗)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옥포해전에서 승전보를 울린 조선 수군이었다. 

 

그렇게 정가(正歌) ‘이순신의 노래’는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로 왔다. 이처럼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나름의 장인정신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또는 우리 일행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치며 가픈 호흡을 하고 있는 그들과 공감하고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놀아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슬프게도 그것이 지금 우리문화의 토양에 대한 지원의 한계이기도 했다. 현실과 한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 혼자 즐기기보다 여럿이서 같이 보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도 ‘문화국가’를 강조했다. 그는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부강(富强)도 중요하지만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과 모두에게 행복을 주겠기때문이다.’라고 했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우리가 물질적 발전만으로는 그것을 넘을 수는 없다. 일등국민이 되려면 문화적 조건도 갖추어야 한다. 그것에는 우리 고유문화의 계승이 선결 조건이다. 

 

전통문화의 창달은 말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에서 어렵게 세상에 나와 씨앗을 뿌린 그들을 이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그들의 문화가 우리 모두의 문화로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오락적 요소를 위해 픽션을 가미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인정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가 살려 주어야 한다. 지금이 그 적기이고 이번의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 민족적 전통문화를 이어갈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지금 세상에는 예산이라고 불리는 세금의 지푸라기들이 온 아스팔트에 날려 뒹굴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예산은 무형적 자산의 특성으로 인해 객관적 기준점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 기준의 단서에 무엇보다 민족문화의 창달 및 계승이 중요하다. 소위 지금까지 해오던 ‘관례에 따라’ 그 원심력에 뒤따라가다가는 고유의 문화를 고사시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문화예산의 사각지대에서 그들이 땀으로 고군분투하여 토해낸 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말로만 전통문화 창달이니 인문학의 회복을 외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임진왜란 초기 나라가 망해가는 순간에 이름 없는 의병이 일어나 전쟁 국면을 바꾸었듯이 그들이 전통문화의 끝을 잡고 애쓰고 있는 지금 겨우 남아 있는 저변이 고사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당장 실천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 땅은 우리 세대만 살다가 가면 그만인 곳이 아닌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땅이다. 문화적 토양은 일구지 않으면 고사되고 그것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기 어려워지는 어쩌면 금수(禽獸)와 구분이 모호해질 수도 있다. 외롭게 북을 치고 있는 그들에게만 고군분투를 요구할 수 없듯이 서둘러 같이 일으켜 세워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정가 ‘이순신의 노래 전국 순회공연’이 과연 나만의 꿈일까.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11.11 10:44 수정 2022.11.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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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