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이봉수 [기자에게 문의하기] /
부산시 강서구 낙동강 하구 일대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성산마을은 난중일기에 독사리항(禿沙伊項)으로 나온다. 난중일기를 살펴보자.
"계사년(1593년) 2월 28일 맑음. 바람조차 없다.
새벽에 떠나 가덕에 이르니 웅천의 적들은 기가 죽어 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 배가 바로 김해강 하단 독사리항으로 향하는데 우부장이 변고를 알리므로, 여러 배들이 돛을 달고 급히 달려가 작은 섬을 포위하고 보니 경상수사 원균 휘하 군관의 배와 가덕 첨사의 사후선 두 척이 섬에서 들락날락하는데 그 태도가 매우 수상하다.
두 배를 잡아 끌고 경상수사 원균에게 보냈더니 원균이 크게 성을 냈다 한다. 알고 보니 원균의 본의는 군관을 보내어 어부들의 목을 찾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초저녁에 아들 연이 왔다. 사화랑에서 잤다."
1593년은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강화협상이 시작된 시기였다. 임진왜란 발발 첫해인 1592년에 왜수군은 옥포해전, 당포해전, 한산대첩, 부산대첩 등에서 이순신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 이후 그들은 바다로 나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웅포, 안골포 등의 왜성을 근거로 웅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수군은 왜군의 소굴인 낙동강 하구까지 진출하여 위력을 과시하면서 수색을 하거나 적정을 살피는 경우가 잦았다. 원균은 이때 죽은 우리나라 어부들의 목을 베어 전공으로 보고하기 위하여 독사리항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