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집단지성(集團知性)

고석근

 

 

인류(동물)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운 이들이 승리했다. 

- 찰스 다윈 

 

 

아프리카의 개미들은 무려 2미터 높이의 집을 짓는다고 한다. ‘헉! 어떻게? 설계도도 없이?’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개미집의 비밀’을 10년 동안이나 연구를 했단다. 그 결과는? ‘각자 알아서 하기’란다. 개미들 세상에는 왕이 없다. 여왕개미는 알만 낳지 지도자나 왕이 아니다.

 

개미들은 타고난 본능대로 살아간다. 오로지 본능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그 결과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각자 알아서 하기! 집단지성, 하나의 집합적인 지능을 만들어 내기. 가장 무서운 조직이다.

 

이런 조직은 최강이다. 중국 고대의 현자 노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 사회다. 그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인간 세상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다. 오래 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다. 어느 명상 모임에서 수련회를 갔단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회원들이 함께 명상을 했단다.

 

그 이후에는 주최 측에서 아무런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각자 알아서 하더란다.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고... 모든 조직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명상 모임에서 회원들이 명상을 하고 나면 어떤 마음이 될까? 본성(本性)이 깨어날 것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본성, 타고난 마음이 있다. 본성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진선미(眞善美)가 있다

 

그런데 인간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획득한 이 본성은 오래되지 않는다. 수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성은 미약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본성을 치열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게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누구나 일시적으로 성인의 마음이 될 수는 있다. 명상(冥想)이다. 명(冥)은 어둡다는 뜻이다. 명상은 ‘나’라는 의식이 어두워졌을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인간에게는 자아(自我), 나라는 의식이 있어, 나 중심적인 인간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 자아가 팽창하면, 인간은 끝없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이 자아를 어둡게 하면, 우리의 깊은 마음에서 본성이 깨어난다. 명상 모임에서 명상을 하고 나니까 다들 성인처럼 행동을 하게 된 이유이다.

 

원시사회에는 이 자아를 어둡게 하는 여러 장치들이 있었다. 전쟁 시에는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그는 다시 부족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명예는 자연스레 주어졌겠지만 어떤 권력도 재력도 주어지지 않았다. 평상시의 부족장에게도 명예는 주어졌지만, 재력과 권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 재력과 권력이 주어지면 특권층이 되기 때문이다. 특권층이 생겨나면, 사람들의 자아가 강해진다.

 

나부터 챙기자! 다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된다. 본성은 무의식 깊숙이 묻혀버리게 된다. 집단지성은 사라지고 온갖 이기주의가 판치는 아수라장이 된다.

 

<총, 균, 쇠>의 저자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는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간 여러 문명들의 사례가 나온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묵시록이 실려 있다.

 

‘이스터섬은 태평양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이스터섬 사람들은 곤경에 빠졌지만 피신할 곳이 없었다. 구원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오늘날 우리 지구인이 곤경에 빠진다면 어디에,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이런 이유에서 많은 학자가 이스터섬의 붕괴를 하나의 비유로, 어쩌면 우리 미래에 닥칠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것이다.’

 

제레드 다이어먼드는 이스터 섬의 붕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시 이스터섬의 지배계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종교적 목적으로 석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때 풍요로웠던 섬은 서로 먹고, 할퀴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석상을 운반하기 위해 나무들이 잘렸고, 농지가 줄어들었다. 인구는 많아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했다. 전쟁이 일어났고, 식량이 부족해 식인 풍습도 생겼다.’

 

그 섬에는 불과 수천 명밖에 살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가지 못했을까? 제레드 다이어먼드는 환경파괴를 주요한 이유로 든다. 하지만 환경파괴는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그 환경파괴가 왜 일어났는가? 그 원인은 ‘지배계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종교적 목적으로 석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에서 찾을 수 있다. 

 

불과 수천 명밖에 살지 않으면서 500여개나 되는 거대한 석상을 세웠다니! 그 큰 석상을 세워야 권위가 서는 지배계급이라니! 그 사회에 집단지성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제레드 다이어먼드는 그들의 종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석상을 쓰러뜨리거나 석상의 머리를 부수는 방법으로 증오심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나무를 베어냈고, 결국 나무는 더 자라지 않았다. 숲이 사라짐에 따라 토양도 황폐해져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석상만 남긴 채 사람들은 사라져갔다.’
 

이스터섬의 붕괴 원인은 불과 수천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지지받지 못한 불의한 특권층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개미들의 집단지성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 개미 사회에 불의한 특권층이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

 

매일 진수성찬을 먹으며 거대한 석상을 세워 자신들을 신격화한다면? 개미들은 석상을 부수고 개미집을 부수고 서로를 죽이며 자멸해 갈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사회의 고위 지도층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무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가를 것이다. 우리가 살만한 곳으로 치는 나라들을 보면 한결같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다.  

 

지금 인류가 처한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다.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부재의 문제다. 우리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보여주는 ‘문명의 붕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현대 인류의 위기를 극복할 참다운 지혜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짐승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면 한다. 

 그들은 아주 침착하고 과묵하다. 

 나는 서서 오래오래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제 처지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애처롭게 울지 않는다. 

〔......〕

 한 놈도 남에게 또는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을 꿇는 놈이 없다. 

 전 세계를 통털어 한 놈도 점잔을 빼는 놈도 없고 불행한 놈도 없다. 

 

 - 월트 휘트먼, <짐승들> 부분 

 

 

현대 인류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퇴화했다. 짐승들은 본능대로 살아가기에 잘 살아간다. 인간은 본성대로 살아야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본성은 우리의 깊은 마음에 희미한 빛으로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 빛을 밝히려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운명이다. 

 

우리가 이 운명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순간에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하나의 티끌로 추락할 수 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2.11.17 11:02 수정 2022.11.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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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