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아홉 번째 발걸음이었다

제 빛을 뽐내고 날리는 낙엽처럼

처음은 여고 1학년 부산에 갔다. 그때 큰오빠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을 다니는 야간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철없는 나이인지라 큰오빠가 힘든 줄도 모르고 부산에 한번 가보고 싶어 갔는데 촌에서 동생이 왔다고 경주는 한번 가 봐야 되지 않겠냐면서 데리고 갔다. 

 

1980년 그때 불국사를 올라가는데 제일교포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분이 노란 깃발을 들고 설명을 하면서 청운교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이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나는 뒤 돌아 한참을 그들이 가는 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내가 그런 역사해설을 하고 있으니 사람은 무의식 속에서 자기 운명을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지금도 그 풍경이 그대로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여고 2학년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은 없다. 

 

세 번째가 지금의 남편과 한 여덟 번째 만난 곳이 경주였다. 10월 말쯤이었는데 그때 단풍이 물든 불국사 앞 잔디밭에서 ‘가을편지’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반하는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는 부산에서 일하던 때 동료들과 다녀왔었다. 다섯 번째는 마흔 살 되던 해 하던 일을 접고 아이들과 전국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길에 처음 들렸던 곳이 경주였다. 

 

 

여섯 번째는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들과 경주 답사를 갔었다. 그때도 각인 된 기억은 별로 없는데 그냥 남산에서 내려오던 길이 참 멀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일곱 번째는 경남남도문화해설사들과 갔던 경주는 노란 단체복을 입고 우리는 해설사의 해설보다는 일상에서의 일탈이 좋아서 그저 깔깔거리고 신이 나기만 했었다. 

 

여덟 번째는 2017년 이순신영상관의 공무직 사표를 쓰고 아이들과 전국여행을 일주일쯤 하면서 처음 들렸던 곳이 경주였다. 

 

아홉 번째 찾아간 경주는 여전히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하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볼거리 생각거리라 넘쳐났다. 젊은 날에는 무심하게 넘겼던 풍경들이 예순이 된 나이에 둘러보니 참 새롭게 다가왔다. 

 

첫 코스는 남산의 감실마애여래좌상, 폐사지 옥룡사,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천마총, 첨성대, 양동마을로 이어지는 답사는 모두가 제각기 담고 있는 사연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는 뜻을 품고 있었다.

 

젊은 날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그냥 희희낙락했던 경주행이었다. 2022년 가을의 경주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의 자연은 참 아름답게 물들지만 사람끼리의 관계는 제 이익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나무에서 말라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듯이 그렇게 메말라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남들은 어찌 살 건 나는 나무에서 제 빛을 뽐내고 날리는 낙엽처럼 남은 삶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는 욕심을 내면서 2022년 경주답사는 내게 새로운 걸음이 되었다. 

 

이번 답사한 곳곳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들은 차차 풀어 내리라 생각하면서 이 나이까지 아홉 번이나 찾아간 경주의 느낌을 적어본다. 다녀와서 처음 경주 갔을 때 남긴 사진을 찾아보았다. 

 

기억은 또렷하나 시간은 흘러 겉모양은 가을 나뭇잎처럼 건조하다. 

사람은 왔다가 이런 기억들을 쌓으면서 낙엽처럼 떠나는 것 같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서재심 alsgml-2@hanmail.net

 

작성 2022.11.21 11:34 수정 2022.11.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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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