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남편은 확실히 남의 편입니다

민은숙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편은 정말 남들이 말하는 “남의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일부러 가정일에 소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도 성격 탓이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부부는 연애 결혼했지만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불같은 연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자지만 성격이 나긋하고 상냥하지 못합니다. 이제 나이까지 들어가니까 점점 중성화(化)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남들이 나이가 들면 부부간에 사랑으로 사는 것보다는 의리와 우정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저와 남편의 성격이 어느 면으로는 남녀의 성별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우리도 이제 우정으로 살아가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제가 퇴근해서 남편에게 직장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안 좋은 일이거나 기분 나빴던 일,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가 끝나면 매번 저의 처지를 공감해주면서 저를 화나게 한 사람들 욕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저도 남편의 직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주었습니다. 그랬던 남편이 제가 일을 그만두고 나니까 변했습니다. 뭐 성격이 변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저의 처지가 바뀜으로 인해서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긴 합니다.  

 

저는 집안일을 하면서, 사실은 집안일이 직장 일보다 여유도 많고 몸도 편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저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은 얼마 가지 않아서 밝혀졌습니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집 밖을 들락거리는 사람이고, 저는 졸지에 집을 지키면서 그 세 사람의 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일을 하더라도 이전에 직장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전처럼 남편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공감하고 싶어서 말을 겁니다. 그러면 이 부처님 반토막 같은 남편은 이전과는 다르게 저의 처지를 공감해주지 않는 겁니다. 그냥 집안일이 뭐가 힘드냐고 하는 무언의 짜증 같은 느낌이 얼굴로 팍팍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의 태도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따질 수밖에요. 이 집안이 뭐 나 혼자만의 집안이냐, 당신이 어디 집안일 한 번 도와준 적이 있느냐, 내가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이제는 괄시하는 것은 아니냐, 등등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남편에게 퍼붓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은 아예 전략을 굳힌 듯합니다. 

 

묵묵부답 전략으로. 이전에는 저의 고달픈 직장생활을 가장 이해하고 공감해주던 남편이었는데, 저럴 때 보면 영락없는 “남의 편”이네요. 도무지 공감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제가 무슨 큰 반응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단지 “그래, 당신도 힘들었겠다.”라는 한 마디면 피로가 싹 가실 듯도 한데, 그 말 한마디에 그렇게 인색합니다. 어쩌면 힘은 힘대로 드는 일을 하는데, 괄시받는 기분입니다. 

 

그냥 다시 출근해서 돈 벌어 올 테니, 남편에게 집안일을 대신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옵니다. 길게도 말고 아들 고3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당신이 집안일을 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집에 있은 지 불과 몇 달도 안 지났지만, 벌써 지금이라도 다시 일을 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참아야 하겠지요? 남의 편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집에서 엄마가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맙니다.

 

집안일은 하나도 거들지 않으면서 남편은 바깥일이 왜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렇다고 해도, 무슨 친구가 많아도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태어난 동네에서 오십이 넘을 때까지 살아서 그런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니 다니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동네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들로 가득 찼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물론 대학은 거의 흩어져서 나왔고, 직장도 각양각색이지만 그래도 사는 곳이 부근이다 보니까, 남편을 친구들로부터 떼어 놓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남편은 “친구 편”이 됩니다. 제 편이 아닌 셈이죠. 

 

친구만 해도 그런데 무슨 취미활동을 그렇게 요란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무슨 밴드에 가입했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친구들 만나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무슨 취미생활이냐고 닦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고집은 완고했습니다. 사실 밴드의 활동 내용이야 뭐 간단한 것입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밴드 모임이 오프라인으로 벌어지면서 생겼습니다.

 

나름 글을 쓰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모를 캘리그래피에 도전하면서 친구들이 아닌 다른 술친구를 만든 것입니다. 학교 동창들만으로도 통제가 힘든데, 이제는 명색에 예술가 모임이라고 하는 밴드 회원들은 더욱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남의 편”도 모자라서 “밴드 회원 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아, 이래서 남편이 남들 편인 모양입니다.

 

[민은숙]

충북 청주 출생

제6회 전국여성 문학 대전 수상

2022 문화의 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열린동해문학 사무국장

이메일 sylvie70@naver.com

 

작성 2022.11.23 13:18 수정 2022.11.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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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