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장편소설 ‘양철북’은 세 살에 성장을 멈춘 한 남자아이의 슬픈 이야기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오스카다. 오스카의 할머니는 처녀 시절에 도망치던 한 남자를 치마 속에 숨겨 주었다. 할머니와 그 남자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고 그 딸은 오스카를 낳았다. 오스카는 어머니 아그네스의 불륜을 보게 된다.
아그네스는 폴란드인 얀을 사랑하지만, 독일인인 마체라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그네스는 얀을 계속 만난다. 오스카의 눈에 그들의 애정 행각이 좋게 비칠리가 없을 것이다. 오스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는 위선의 덩어리다.
오스카는 세 살 생일이 되던 날, 성장을 멈추기로 한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오스카는 세 살의 작은 아이로 살아간다. 그는 항상 양철북을 두드리며 자신의 길을 간다. 누가 양철북을 빼앗을라치면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진다. 오스카는 힘겨울 때는 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간다. 오스카의 반대편에 히틀러가 있다. 그는 어머니의 치마 속을 거부한 사람이다. 그는 이 세상을 마음껏 휘젓고 싶어 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모계사회였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히틀러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남자는 한평생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사회가 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되었다.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가던 남자가 한 나라를 이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어머니의 통제를 받지 않는 남자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서 어머니가 된다. 생명의 신, 땅의 신이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남자는 계속 아이로 머문다.
그래서 원시사회에서는 남자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성인식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인식이 없는 아버지의 나라는 무서운 악동들이 판치는 아비규환의 세상이 된다. 무수한 히틀러들이 세상을 휘저어 놓는다.
오스카가 본 무서운 세상은 아버지의 나라였다. 어머니의 나라였다면, 두 아버지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스카도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갔을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에는 오스카가 무수히 많다.
남자들의 가슴에서는 늘 북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북소리를 따라가는 건, 아이다. 어른으로서 북을 치며 살아가지는 못한다. 가끔 무서운 소리를 지른다. 유리창을 박살낸다. 끝내 오스카는 어머니, 아버지들을 죽게 한다.
다들 멀리 떠날 때, 할머니는 그 땅에 머문다. 하지만 이제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할머니는 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다. 오스카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결심한다. ‘이제 자라기로 하자!’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들이 자라려면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오스카는 조금 자라다 만다. 곱사등이가 된다. 결국에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남자가 어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가? 내 안에 오스카가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내가 살아가려면, 내 정신은 오스카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오스카를 거부할 때 나는 히틀러가 된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오스카와 히틀러라는 두 남자뿐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