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겨울 바다와 동행(同行)

하진형

사진=하진형

 

남해안에는 칠천량 바다도 있고 한산도 앞바다도 있다. 칠천량 바다는 여느 바다와 다르다. 햇빛을 받아 푸르름을 뽐내는 쪽빛 바다도 아니고 파도를 하얗게 끌고 와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름 바다도 아니다. 좁은 곳을 세차게 흐르는 량(梁)의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빠르게 흐르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바다였다. 

 

약간은 검은 듯한 빛을 품고 앉아 그림자가 짙은 산골짜기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사백여 년 전에 일만의 생명이 물속으로 잠기어 가며 아우성치는 소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바닷물 색깔이 옻칠 같다고 하여 붙여진 칠천량(漆川梁)의 검은 바다 위로 겨울 햇빛이 쏟아져 내리며 바람을 잠재우고 있다.

 

세상에는 아무리 작은 것도 의미가 있듯 우리가 그때 그 바다와 손잡고 서 있을 때 어느 곳에선가는 또 다른 인연(因緣)들이 바람과 바다와 손잡고 있다. 물고기 눈이 되어 검은 바닷속으로 한없이 헤엄쳐 내려간다. 깊은 바다에는 섬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바다 밑은 외롭지 않다. 수면 위의 섬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그들은 그렇게 언제나 손을 잡고 있다.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그곳이 외나무다리이든 고속도로의 휴게소이든 결국은 어디서든지 만나는 것처럼.

 

또 다른 좁은 내(川)인 견내량(見乃梁)의 세찬 물결에 휩쓸린다.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빠른 물결이 느려지며 주위를 살핀다. 한산도 앞바다에도 분명히 인기척이 있다. 칠천량의 조용한 바다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밖으로 나가면 누구나 노닐 수 있는 넓은 바다(公海)다. 넓은 바다로 나가면 누구나 자유롭지만 나가기 전 바다는 수면(水面) 위에서 투과(透過)해 내려온 빛이 깊은 바닷물을 가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도 누군가는, 그 무엇인가는 있다. 검은 바다와 푸른 바다, 좁은 바다와 넓은 바다의 차이는 있지만 그 느낌은 비슷하다. 

 

그랬다. 이곳 역시 사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에 반인문주의자들의 과욕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서는 쏟아져 내리는 햇빛 아래서 칼춤을 추다가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는 영원히 올라오지 못한 영혼들이 있는 곳. 검은 바닷속의 그들과 마찬가지다. 칠흑 같은 밤에 더 검은 바닷속으로 떨어진 것 이외에는. 그렇게 말없이 세월은 흘렀고, 그때 흘렀던 바닷물은 여러 곳들을 돌고 돌아 다시 흐르고 있다. 다행스런 것은 어느 곳이든 섬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또 삶은 죽음의 일부라고도 한다. 삶과 죽음이 곧 자연이고 생멸(生滅)의 섭리(攝理)를 이루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런 섭리이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사백여 년 전 승리의 바다나 패배의 바다나 모두 왔다가 다시 돌아감을 반복하는 섭리의 바다다. 어쩌면 생물(生物)이란 것이 ‘살아있는 것’과 ‘모든 사물’을 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한 것이다. 그곳에는 승군(勝軍)과 패군(敗軍)이 바다 깊은 곳으로 스러져 두 손을 맞잡아 치켜들고 수면 위로 떠오름이 있다. 그때 그들은 이미 적(敵)이 아니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웃일 뿐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세상 모든 것이 음양(陰陽)이고, 그 음양의 조화로움이 세상에 문명(文明)을 만들고 이어간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 상호의존의 원리가 작동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도와서 역사를 발전시킨다. 음양은 곧 다양성(多樣性)이다. 겉으로는 지상(地上)과 지하(地下)가 다르고 속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또 부부가 다르다. 부부는 너무나 맞는 것이 없어서 ‘부부 그 자체가 로또’라는 시쳇말(時體말)도 있지만 부부는 반대 성향끼리 만나야 각자의 장점이 접목되어 우량적인 후손들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 내 남편(아내)이 나와 어쩌면 이렇게도 맞지 않을까 하고 한탄할 일만도 아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의 가르침을 새긴다.

 

겨울 햇빛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한산도와 칠천도 바다로 내려오고, 오늘도 청천(靑天) 하늘과 깊은 바다는 서로를 부르고 있다. 이웃 바다의 물이 서로 몸을 섞고는 손을 잡고 흐른다. 끝없이 그리고 조용히 흐른다. 만학(晩學)의 청춘들이 양쪽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손을 씻는다. 그리고 같이 손을 잡고 걷는다. 식당을 나서면서 각자가 챙겨온 똑같은 사탕을 바꿔 먹으며 웃는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다양한 친구들과의 동행은 축복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데 함께 나서길 참으로 잘했다. 이제 더 이상 깊은 바닷속에 머물지 말자.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11.25 11:13 수정 2022.11.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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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