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생처음 1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이모네 댁을 방문하는 기회를 잡게 된 나 대머리 한 씨가 장녀 예련이다. 기차만 시간마다 멀리서 지나가는 것은 보았었다. 마을에는 차주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그야말로 깡 시골에서만 11년을 지낸 어리숙한 예련이다. 더군다나, 이웃 마을에 사는 오빠가 놀려대기 바쁜 앞니 빠진 갈강새이다.
이종사촌 언니가 먼 길인 예련 집에 방문하였고, 참으로 고맙게도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운을 띄웠다. 마침 여름방학이기도 했기에 속으로 제발 가고 싶다고 두 손을 모았더랬다.
이심전심일까. 아빠가 허락했고 듬직하고 예쁜 언니를 따라 긴 여행길에 올랐다. 그동안 여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번도 없었고, 버스를 타고 1시간 이상 가보는 것도 처음이라 묘하게 기대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친척이라고는 이웃 마을 큰집과 외갓집밖에 가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남다른 예련은 버스정류장도 신기하고, 똑같은 하늘과 바람인데도 다르게 이계와 같이 신비롭게 생각된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언니의 안내에 따라 여정이 시작된다. 조금 열린 차장 사이로 산들바람이 내 귓가에 같이 가자고 속삭인다.
관자놀이를 애무하듯 문지른다. 입가가 저절로 올라간다. 참 기분이 좋다. 가슴이 탁 트인다. 가슴을 열어 사람들이 보건 말건 빙빙 돌며 두 손으로 하늘을 향해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몇 정거장을 지나쳤을까 싶은 정류장에서 잠시 정차한다. 나이 지긋이 자신 꼬부랑 할머니가 보자기를 들고 차에 올랐다. 이리저리 빈 좌석을 찾는 듯한 시선을 훑는다.
천천히 일어나 좌석 손잡이를 잡고 옆에 서서 앉기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털썩 앉으며 "새하얀 애긴 어디 가누?" 숫기도 없거니와 사실, 어디를 가는지 정확히 모르는 예련은 선뜻 대답하질 못한다. 그렇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선 공기들과 풍경들을 대면하며 만나고 금세 헤어진다.
편평한 아스팔트 길에서 갑자기 가래 끓듯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로 둔갑했다. 버스는 가끔 바이킹을 흉내 내고 싶은 듯 곡예를 하기 시작한다. 몸이 한쪽으로 휩쓸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속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차장을 통해 흙먼지가 약 올리듯 “메롱” 하더니 웃으며 지나간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신물이 넘어올 듯 말 듯 애태운다.
할머니 뒷자석의 할아버지가 아까부터 힐끔힐끔 쳐다본다.
"하얀 애기, 몇 살이여?"
"........."
"어디 가는 길인가?"
"........"
"이 애기, 벙어린 개벼?"
부유하는 건조한 흙먼지와 한 몸 되어 뒹구는 바람이 비웃으며 깔깔거린다. 덜컹거리는 차제는 일부러 못 볼 꼴을 보여 주겠다 작정한 듯 초행길의 소녀 입을 더 바짝 오므리게 한다.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모네 집 정거장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쯤에야 겨우 도착했다. 버스의 문이 챠르르르 느리게 열리고 그에 반하는 섬광 같은 속도로 튀어나온 예련은 그대로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옆에서 차마 볼 수 없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고 말았다.
[민은숙]
충북 청주 출생
제6회 전국여성 문학 대전 수상
2022 문화의 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열린동해문학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