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푸르른 날>

서정주·송창식·송창식

유차영

초록이 지쳐 물들었던 단풍도 지고, 칼칼한 바람과 영하의 기온에 얼어붙은 임인년도 저물어 간다. 검은 호랑이를 호들거리던 호사가들은 다시, 검은 토끼가 깡충거리는 계유년을 서둘러 설담하고 있다. 세월유수(歲月流水) 세통유가(世通流歌)다. 흐르는 세월은 물과 같고, 그 세월에는 흘러오고 흘러갈 노래들이 낭랑거린다. 이런 때, 세상은 유행가와 통한다고 했던 공자(BC 551~379)의 설파가 유난하게 되새겨지는 것은 왜일까. 이런 절기가 오면, 사람들은 그 어른이 남긴 시경(詩經) 305편을 다시 들추면서 시(詩)와 노래(歌) 중에서 시가 먼저였으리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먼 옛날에는 시보다 노래가 먼저였음을 기억하시라. 이 응얼거림(노래)은 음악(音樂)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던 시절이다. 시경 속의 시는 그 시절 천하를 주유한 행인(行人)들이 수집해 온 3천여 수의 구전 민중 노래 중에서 취사선택한 것이기에 이 논리가 옳다. 이렇게 수집한 시를 공자는 풍아송·부비흥(風雅頌·賦比興)으로 구분 지었다. 

 

앞의 풍아송은 시의 내용상 구분이고, 뒤의 부비흥은 형식적인 구분이다. 이것이 시의 여섯 가지 뜻이란 말, 시지육의(詩之六義)이니, 노래가 먼저였음의 증거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먼저 지어진 시를 노랫말로 하여 가락을 엮는 풍조가 생겨났다. 1983년 송창식이 절창한,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여 부른 <푸르른 날>이 그 예이다. 송임인년(送壬寅年) 영계유년(迎癸酉年)의 섣달 절기에 매다는 곡조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https://youtu.be/GmvoHZuGRnY

 

노랫말에 사계절이 걸쳐 있다. 죽기 살기를 가름할 만한 그리움도 매달고 있다. 사랑하는 네가 죽고 없는 세상, 나만 덩그러니 세월의 강 물결 위에 떠 가는 돛배에 앉아 있는 날을 상상해 보시라.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고 보내는 날은 필연적으로 오고야 말 터인데... 어이하리야. 이것이 우리네 인생인걸. 이 노랫말 모티브는 1948년 시집 『귀촉도』속의 <푸르른 날>이다. 이 절창은 1983년 제1회 KBS 작사 대상을 받았다. 기존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상이었다니, 요해(了解)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 노래 속의 화자는 깊은 가을을 마주하고 앉아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봄·여름·가을·겨울과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사랑의 상념에 빠져 있다.

 

<푸르른 날> 노래가 발표될 당시 서정주는 68세, 송창식은 36세였다. 서정주는 1915년 고창 출생, 2000년 향년 85세로 작고한 생명파 시인이다. 호는 미당(未堂)·궁발(窮髮)이고, 부안에서 자랐다. 그는 1933년 개운사 대원암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 한 후,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했다. 1936년 김광균·김동리·오장환과 시인부락 동호활동을 하였고,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때,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 개명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해방 후에는 우익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였으며, 이후 서라벌예대와 동국대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화사집, 귀촉도, 신라초, 국화 옆에서』등이 있고, 서울 관악구에 시인의 고택이 남아있다.

 

<푸르른 날> 노래의 주인공 가수 송창식은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3년 뒤에는 어머니와도 헤어져야 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음악을 좋아했고, 6학년 때 인천여상 강당에서 오케스트라를 보고 나서 가수의 꿈을 가졌다. 그 꿈 덕분에 인천중학교 대표로 노래콩쿠르에 참가하여 1등도 하였다.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지휘자 금난새(1947~)와 동기동창으로 성악과에 입학하였으나,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다. 그가 세시봉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운명이었을까, 숙명이었을까.

 

송창식은 친구가 다니던 홍익대에서 노래를 하다가 우연히 동갑내기 이상벽(1947~. 황해 옹진 출생)의 눈에 들어 세시봉에서 윤형주를 만난다. 이렇게 1967년에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 듀엣)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1970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대중들의 감성을 관통하는 <고래사냥>을 포효했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 <왜불러>처럼 1970년대 중반 국민애창곡을 불렀다. 그의 노래는 가사도 시대 이념을 혼융하고 있지만, 절규하듯 내어 지르는 목소리의 울림은 듣는 이들의 막막한 가슴팍을 훌훌 털어내 준다. 그의 노래가 인기 날개를 단 그 시절은 권위와 낭만이 충돌하여 감성의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깨인 영혼에 멍이 들던 시절이다. 대마초 사건(해피스모그 사건)과 대중 연예인 학살, 서울의 봄으로 이어지던 그 시절을 관통한 세대들이 오늘날 통칭하는 7080세대들이다. 이제는 황혼의 언덕길을 오르는 나그네들~.

 

송창식의 대중가수 발판 기지 같은 세시봉(C'est Si Bon)은 1947년 앙드레 오르네즈가 작사하고, 앙리 베티가 작곡한 프랑스의 샹송인데, 1950년에 제리 시렌이 영어가사를 써서 <It's So Good> 타이틀의 노래가 되었다. 이를 본딴, 서울의 음악 감상실 이름 세시봉은 1953년 무교동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감상실이다. 이후 1963년 서린동으로 옮겼다가 1969년 문을 닫은 것이 원조이며, 197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와 유사한 감상실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이곳에서는 커피 한 잔 값으로 하루종일 앉아서 팝송·샹송·칸초네를 즐길 수 있었다.

 

송창식 하면 특이한 개량한복(改良韓服)이 떠오른다. 부인 한성숙이 한복 연구가라는 말까지 덧붙는다. 하지만 부인이 한복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1984년경부터 개량한복을 입는데, 그 동기는 1976년 홍콩 아마추어 가요제 참석 때 입은 한복 덕분이다. 그때 송창식 스스로의 눈에 비친 첫날의 양복은 후줄근하고, 둘째 날 입은 한복은 최고로 멋져 보였단다. 이후 스스로 복제 공부를 하고, 1977년 결혼 후 부인에게 연구를 맡겼다. 이후 부인이 송창식의 옷본을 만들었는데, 그 옷본을 이태원 한복 프로들에게 가져갔다가 퇴짜를 맞는다. 그렇게는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들은 후, 김도향(1945~)이 소개한 보광동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맡겨서 만들기 시작한 한복이 100벌이 넘는단다. 도처상수(到處上手), 전문 프로 위에 실용 프로가 있음이다. 한복의 개념은, 원단에 있을까 디자인에 있을까. 실용 프로는 매니아다. 요즈음은 매니아가 전문가를 능가하는 시대다. 매니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 오랜 기간 밤잠을 줄이면서, 코피를 쏟으면서 행복감에 젖어 드는 이들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시가 노래가 된 예는 많다. 그 시초가 1956년 세상에 나온 <세월이 가면>이다. 이 노래는 명동에 있는 동방살롱 맞은편 빈대떡집에서 박인환이 시를 쓰고, 이진섭이 즉석 곡을 붙여, 그 자리에 있던 임만섭이 처음 불렀단다. 음반으로는, 그해 나애심(본명 전봉선)의 목소리로 신신레코드에서 처음 나왔다. 이후 현인, 현미, 조용필이 불렀고, 1976년 박인희가 히트시키면서 그녀의 대표곡이 되었다. 박인환은 이 시를 쓴 1956년 3월 17일, 시인 이상(李葙. 1910~1937, 본명 김해경) 추모행사를 하며, 3일간 연속 과음을 한 후유증으로 3월 20일 31세로 요절했다. 심장마비였다.

 

인생은 유한하고 예술은 영원하다. 노래가 된 시는 많다. <부모>(김소월·서영은·유주용), <세노야>(고은·김광희·양희은), <개여울>(김소월·이희목·정미조), <세상모르고 살았노라>(김소월·지덕엽·활주로), <순아!>(정만영·최주호·최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원용석·라스트포인트), <실버들>(김소월·안치행·희자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이세문·유심초), <향수>(정지용·김희갑·이동원),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안치환·안치환), 이 외에도 <그리운 금강산>, <기다리는 마음>, <그대 있음에>, <산 너머 남촌에는>, <등대지기>, <섬 집 아기> 등도 있다.

 

문밖에 마른 바람 소리가 스산하다. 저물어가는 한 해와 다가오는 한 해를 가르고 또 이으려는 허공의 휘파람이다. 남녘 바다마을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같다. 남빛 쪽빛 에메랄드빛 물속으로 곤두박질했다가 다시 솟구친 뒤 내뿜는, 터지는 저 막막한 숨결~, 휘이~. 요술 같은 소리이다. 해녀들의 인생 곡절이다. <푸르른 날> 노래를 아물거리며, 저물어가는 섣달에, 다시 피어날 연두빛을 꿈꾼다. 네가 먼저 죽고서 내가 홀로 살아간다면, 내가 대책도 마련도 없이 먼저 가고 네가 홀로 산다면, 새로 피어날 봄날의 이파리는 무슨 색깔로 피어날까. 코스미안으로 어우러져 가는 세상, 아듀~ 2022년, 웰컴 2023년이여.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유차영 519444@hanmail.net

 

작성 2022.12.02 11:02 수정 2022.12.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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