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시론] 중국의 '백지 시위'와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

여계봉 선임기자

 

지난달 25∼27일 중국 곳곳에서 고강도 방역 통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한 대학생이 백지를 들고 침묵시위를 시작한 이른바 '백지 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 운동은 시위 참가자에 대한 당국의 형사적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통제하는 중국 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근본적 원인이었다. 

 

중국의 '백지 시위' 장면(출처: 위키리스크)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세계인들의 축제인 카타르 월드컵의 경기장에서 수 만 명의 관중들이 마스크 없이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본 중국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되어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마침내 금기어나 다름없는 "시진핑 물러나라!", "공산당 물러나라!"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중국 정부는 '백지 시위'가 일어난 지 약 열흘 만에, 코로나19 팬데믹 약 3년 만에 마침내 실질적인 '위드 코로나'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백지 시위'를 보면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 의 '백지 투표'가 자연스럽게 오버 랩 된다. 작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11년 만에 연장선 상에 있는 '눈뜬 자들의 도시'를 발표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출처: 위키피디아)

 

'눈먼 자들의 도시'가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1차적 공황 상태인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눈이 멀고 나서의 혼란과 공포를 다루고 있는 '신체적 공황'인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시력을 회복한 시민들이 겪는 2차적 공황 상태인 '정치적 공황'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비 오는 날 지방선거일 투표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거 당일, 이 나라 수도에 유권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나타나지 않는다. 투표 시간을 두 시간 연장해가며 겨우 선거를 마치지만 유효 투표율은 25%에도 못 미친다. 무려 70% 이상이 백지 투표였다.

 

1주일 후에 선거를 다시 치르지만 결과는 더 황당할 뿐이다. 이번에는 백지 투표율이 83%까지 치솟는다. 시민들은 우파든, 좌파든, 중도든 그 어떤 정파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정부는 거리에 비밀정보원을 풀어놓는 등 각 부처가 진상 파악에 나서지만 원인, 혹은 발단은 오리무중일 뿐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출처: 해냄출판사)

 

전작과 마찬가지로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정부의 선택은 이전과 똑같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국민을 기만하고 자기들만 살길을 모색하는 극히 이기적인 모습뿐이다. 마침내 현실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시민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를 형성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백지 투표"로 분출된다. 자기중심의 기득권을 취한 정치가들, 유권자를 통제하려는 위정자들에 대한 응징을 "백지 투표"로 심판한 것이다. 

 

중국의 '백지 시위'는 단순히 방역 정책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그동안 겪어왔던 억압된 자유에 대한 절망과 좌절의 표현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실업난, 불평등한 이익의 분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불만으로 누적됐고, 억압적인 공안 정책이 위구르 화재의 참사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억눌려온 민중의 정서가 '백지'라는 무언의 항의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현재 '백지 시위' 물결은 잠잠해진 듯하다. 정부가 10개 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민심 달래기에 나섰고 시위 목소리의 정치성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검열을 강화한 효과가 일시적으로 먹힌 셈이다. 그러나 시위가 잠잠해졌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중국 정부는 이번 시위가 남긴 파장을 염려하여 국가권력의 통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후속 조치, 즉 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검거와 처벌, 그리고 향후 항의 시위의 원천 봉쇄를 위한 다양한 대책 등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으로 현재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내용과 너무나 흡사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우리 사회를 비유와 풍자로 묘사한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거대한 우화다. 소설의 표지에 적힌 '세상의 모든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중국을 위시한 세계 위정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yeogb@naver.com

작성 2022.12.14 11:01 수정 2022.12.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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