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

잃어버린 가야사 복원

북한산 비봉에서 조국 잃은 가야 왕족의 한을 달랜다

 

한파가 몰아친 12월 중순 단열 무장하고 북한산에 오른다. 탕평대성곽을 타고 향로봉 아래에서 비봉을 바라본다. 산상에 오뚝 선 진흥왕 순수비석이 만 산하를 호령하는 듯 위풍당당하다. 언제나 북한산에 오르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 뿌듯한 반가움에 젖는다. 북한산성이 안겨주는 편안함이었다. 서울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북한산은 서울의 모산이지만 한양을 지켜주는 배산이다. 한양성, 탕평대성, 북한산성은 한양을 보호한다. 한양성은 도읍의 지키는 성이고 탕평대성과 북한산성은 행궁을 위한 피난 산성이다. 

 

숨차게 올라 비봉에 이르렀다. 오늘은 작심하고 순수비에 얽힌 사연을 말하려고 한다. 현재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가비(假碑)다, 정비(正碑)는 국립박물관에 있다. 신라는 가야를 정복하고 국력을 확장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넘봤다. 

 

비봉에 올라 진흥왕순수비 앞에서 큰절하고 순수비를 세운 신라의 대장군 각간 비차부(김무력)님께 문안 인사를 드린다. 이 비는 AD 555년 신라 진흥왕 때 비차부가 백제 땅인 한강 하류를 정복하고 한강 신주(태수)가 되었을 때 진흥왕이 확장 영토를 순회하면서 자신의 공적비로 세운 것이다. 가야의 왕자였던 김무력은 조국을 배신하고 진흥왕의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이고 한강 하류를 정복하였고 백제가 점령한 창녕 땅을 회복하였던 가야의 왕자였다. 

 

그 공적을 창녕비, 단양신라적성비, 북한산비에 적었고 그 후 고구려 땅을 정복하고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를 세우고 국왕을 불러 모시고 제막 순례를 하였다. 진흥왕 순수비엔 당대 8장군의 공을 건립 비문에 남겼다. 이사부, 두미, 서부질, 거칠부, 나례부, 비차부, 고두림, 조흑부였다. 특히 북한산 순수비는 거칠부와 비차부(김무력)가 세운 비석이다.

 

김무력은 누구인가?

 

그는 금관가야 구형왕의 왕자였다. 532년 신라 법흥왕과 이사부가 금관가야를 정복할 때 구형왕의 4자녀 노종, 무덕, 계남(공주), 무력 중에 3남으로 태어났다.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하고 왕자들을 불러 ‘신라로 귀화하여 가야 부활을 도모하라.’라고 이르고 왕은 전장으로 나갔다. 왕족들은 신라로 귀화하여 백성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죽어갔는데 신라 왕족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조국을 배반한 행위였다. 가야 왕자 김무력은 신라 장수가 되었고 법흥왕의 처제와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제2 아내는 진흥왕의 딸이었다. 이렇게 신라왕의 총애를 받으며 이사부의 부관이 되어 거칠부와 함께 대장군으로 승진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과 손자 김유신, 증손자 김삼광, 김시득, 고손자 김윤중은 삼국통일의 일등 공신이었다. 김무력은 한강 하류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밀어낸 후 한강 신주(태수)가 되었다. 그와 후손들은 조국을 망하게 한 신라의 장군이 되어 나. 당 연합을 이루어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통일 신라는 당나라 식민지가 되었다. 그런데 나.당 전쟁을 치러 당나라를 몰아낸 신라 최고 명문 가문이 되었다. 

 

김유신 장군은 김해김씨와 신라김씨의 종묘를 합사하였다

 

비봉의 순수비를 바라보면서 김해김씨 후손이 김무력 장군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김해김씨인가요? 新金氏인가요? 아버지 구형왕은 신라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는데 당신은 신라의 장수로 대가야를 쳤습니다. 어떻게 금관가야의 왕손이 조국을 멸망시킨 신라에 충성을 맹세하고 대장군이 되었습니까? 장군은 백제 성왕을 관산성 전투에서 죽이고 고구려까지 밀어낸 진흥왕의 영토 확장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손자 김유신 장군은 김해김씨 성을 버리고 신김씨로 변신하여 신라 왕족에 버금가는 영화를 누리며 자식들을 신라 왕족과 혼혈시켜 김해김씨의 혼을 희석했습니다. 조국을 배반한 장군은 법흥왕이 동서, 진흥왕의 사위로 대장군 이사부 밑에서 거칠부와 권력을 다투는 신라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백제로부터 정복한 한강 하류의 태수가 되어 자식 김서현을 신라의 장수로 키웠고 신라 왕족과 혼인시켜 손자 김유신을 낳았으며 김유신은 태종 무열왕의 장인이 되어 나·당 연합을 이루어 삼국통일을 이루었지요.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가야와 신라의 종묘를 합사(宗廟合祀)하여 신김씨(新金氏)로 개명하여 아들 김삼광, 김군승, 손자 원술등이 신김씨 자손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지요. 그리고 김유신과 천관녀의 숨겨진 아들 김시득은 기벌포 나·당 전쟁에서 당나라군을 몰아내어 신라인이 가장 존경받는 장수가 되었어요. 그렇게 금관가야 김씨가문은 신라통일을 완수한 공신이 되었으나 결국 신라김씨에게 가야 왕족이 숙청당하는 수난을 당했지요. 

 

그러나 증손자 김윤중는 신김씨를 김해김씨로 회생하여 조국을 배신하고 신라에 충정한 왕족을 비탄한 심정을 고백하고 잃어버린 조국 가야를 되찾을 꿈을 꾸었지요. 김윤중은 조부 김유신이 종묘를 합사한 신김씨 성을 타파하고 김해김씨 성을 되찾은 후손이었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왕국의 김해김씨를 되찾아 김해김씨 중시조가 되었지요. 조부가 저지른 화근을 되돌려 김해김씨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장군님, 후손들은 그렇게 변신했는데 당신은 가야의 왕손입니까? 신라의 장군입니까? 당신이 가야 정복에 나갔을 때 아버지 구형왕은 신라군과 전투를 하다가 전사를 했지요. 직접 아버지와 전투는 안 했지만, 아버지는 이사부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김윤중 장군은 종묘합사를 타파하고 가야 왕족으로 회생하였다. 

 

김수로왕은 김해김씨 시조왕이고 김윤중은 잃어버린 본관을 찾아 김해김씨 중시조가 되었다. 가야 무장들의 주력으로 신라가 통일을 이뤘을 때 가야 비밀결사대 복야회는 가야 왕족의 부활을 꿈꾸었고 삼국통일을 가야의 통일로 기원했으나 신라왕계와 가야왕계의 다툼에서 소외당했고 신문왕의 강력한 가야계 숙청작업으로 가야왕계는 한없는 나락의 길을 걸었지요. 그런데 불행한 것은 김무력 장군님의 자존들은 신라 왕족과 혼혈이 되어 스스로 신라 왕계라고 하였지요. 가문의 수치이며 왕족의 패륜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김유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가야 장수들이 이룩한 통일인데 신라의 왕족들은 가야의 통일이라고 부르짖는 복야회 비밀결사대를 여지없이 짓밟았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군의 손자 김시득 장군과 증손자 김윤중 장군은 나.당 전쟁에서 당나라군을 물리치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룩하면서 가야 김해김씨로 회생했습니다. 물론 다시 김해김씨가 부상한 것은 성덕왕의 외손에 대한 배려였어요. 김윤중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장군의 후손들은 신라의 신김씨로 고착되었을 것입니다. 

 

가야의 부활을 꿈꾸다

 

김해김씨 후손들은 장군과 아들보다는 증손인 김윤중 장군을 존경합니다. 그분이 가야 왕족의 김씨 성을 찾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삼국통일은 가야의 통일인가, 신라의 통일인가? 아직도 가야 김씨 왕족들은 심히 유감스러운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조국을 빼앗긴 왕족의 한으로 생각해야죠. 그리고 조국을 배반한 왕족이 겪어야 했던 슬픔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가야 왕족이 조국의 혼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가야는 신라보다 찬란한 문화와 국력을 가졌지만 6가야 분산으로 힘이 소진되어 망했지만 가야 왕족은 조국의 부활을 외면했지요. 북한산 비봉 순수비 앞에서 장군의 행적을 비판하며 잃어버린 가야사 복원을 기원 해 봅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김용필 danmoon@hanmail.net

 

작성 2022.12.15 10:34 수정 2022.12.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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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