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어쩌면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요즘 며칠은 시베리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방안이라 하더라도 공기가 차다보니 취침 시 머리에 가벼운 파카를 뒤집어쓰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집이 허름해서가 아니다. 비록 오래되었지만, 격조 있고 정성이 깃든 비교적 튼실하게 지어진 집이라도 세월의 무게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흔한 말로 ‘오래되면 사람이고 집이고 골병이 든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병원에 가게 되고, 집은 여기저기 수리를 하면서 고쳐 쓰게 된다. 오랜만에 옷을 뒤집어쓰고 자니 군복무 시절이 생각난다. 산악지역에 있던 기지는 해발 1400미터에 달하는 고지대에 위치해서, 근무자들은 폭설과 강풍과 혹한을 견뎌야했다.
작전구역을 벗어나 조금 아래 위치한 BOQ(독신 장교숙소)는 바람은 잦지만 한 밤에는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실내에 스며들었다. 내복 위에 내피를 걸치고 전기장판을 켠 채로 침대에 눕지만, 살을 에는 추위는 잠을 청하기에 버거웠다. 그때 목과 머리를 파카로 덮으면 쉽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자원해서 갔으니, 소위 시절은 (지금 돌아보면) 낭만과 무모함, 의욕과 소명감이 존재 안에 소용돌이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과 기억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과 산 경험이 되었다.
추위는 공간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기억에 내재하는 추위... 그것은 한 존재에게 영속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한 작가의 글에서 느끼게 된 추위. 그의 글속에 가난과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과 상심과 상처가 배어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무겁고 상흔 깊은 경험이고 기억이었겠는가. 그는 그 가난과 고통을 천복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육체적 안위는 안락, 권태, 무력감, 공허감을 불러오는 반면, 삶의 도정에서 얻은 영혼의 눈 뜨임으로 인해 작가는 찰나의 피어남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이란 꼭 같은 경험이 아니더라도 세상살이는 충분히 공감할 여지가 있으며, 인간의 공감능력은 무한대로 넉넉히 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추위 속에서 온기를 향하는 열망이, 아쉬움 없고 편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소소한 재미와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배고픈 삶이 꿈꾸는 따뜻하고 평온하고 공평한 세계에 대한 갈망을 뼈저리게 공감한다. 결핍과 상실에 결이 닿지 않은 안온한 글이 어찌 감동을 낳겠느냐는 맥락을 읽어내게 된다.
슬픔이 배어들지 않은 안온한 삶에서 나온 글이 어찌 가슴에 울림을 일으키고, 파문을 일으켜 퍼져갈 수 있겠는가. 작던 크던 간에 중력을 이겨내는 글이 (내 생각에는) 쌓이고 살아남아, 생기 있고 풍요로운 화단을 만들어낼 것이다. 코스미안의 화단에 그런 글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나로서도 어찌 큰 울림을 만들어낼까, 큰 파문을 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끊임없는 과제다. 글의 절절함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본다. 프로라는 의식(마음가짐)으로 쓸 때와 취미로 쓸 때 다가오는 글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적어도 ‘작가’라는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있을 때, 글을 대하고 쓰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도공은 ‘미완성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흠이 보일 때, 시장에 내놓는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 깨부수어 자신의 결핍을 보정해가는 모양이다. 요즘 유행하는 ‘도장깨기’란 예능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선천적인 노래 재능을 갖춘 한 출연자(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인)의 고민은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섭외가 많이 오는데 어떡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 가수 멘토의 조언은 시의적절해 보였다. 바로, 미완성의 상태로 자꾸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한 작가에게 있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의 삶의 노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그의 글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실험을 다 끝내고 설원에 섰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가난과 결핍’을 버무려 풍요롭고 따뜻하고 깊이 있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그런 글에 친근감을 느낀다. 나 또한 ‘상실과 결핍’이 삶을 추동하는 중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험적이건, 현재진행형이건, 완성의 경지에 있든 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다. 언제고 자신의 글을 돌아보며 따져볼(성찰하고 되짚어볼) 기회가 있겠지만, 현재로선 작가가 되는 것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작가가 되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
‘저공비행’을 할 수 있음이다. 고속비행이 아닌 저속비행과 저공비행을 통해, 낮은 곳의 면면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격식(남을 의식하는)에 매일 필요가 없을 것이며, 다양한 삶의 양상을 보고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시간, 대인관계, 생업에 있어서 자유로울 것이며, 의지가 있다면 여행, 사색, 만남, 시간운용에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창조를 할 수 있다는 대체불가의 가치를 지닌다.
다만, 여러 불편함(그것들은 무시하기 보다는 후에 기술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고 또 쓸 것이다. 나를 깨어있게 한 ‘아픔과 결핍’이 내 곁에 살아 숨 쉴 때까지.
“결핍은 존재를 채우고, 아픔은 존재를 성숙케 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