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낙엽이불

하진형

사진=하진형

 

겨울은 많은 생명체들이 내년의 봄을 꿈꾸며 잠에 든다. 활엽수도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는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일년생은 물론 여러해살이(多年生) 풀들도 가늘어진 누런 머리를 흩날린다. 산 아래 작은 집 느티나무도 무성하던 잎들을 모두 털어내고 까치집 두어 개를 남겨둔 채 겨울잠을 잔다. 그 잠든 느티나무에 까치는 온종일 드나들고 땅바닥엔 뒤늦게 떨어진 낙엽 몇 개가 뒹굴고 있다. 누런 황토마당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는다.

 

그렇게 겨울은 춥기도 하지만 평온하다. 산 아래 작은 집도 엎드려 햇볕을 받는다. 낮은 산이지만 마을지킴이 낙락장송(落落長松)도 있고 지난봄에 갓 올라와 한 해를 넘긴 어린나무도 있다. 산자락을 내려와 들(野)로 나올 때는 작은 도랑을 건너야 한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땐 도랑의 명맥만 유지하다가 여름 장마철엔 제법 역할을 하는 도랑은 우리에게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 지어 가르친다.  

 

오늘은 모처럼 겨울 청소를 했다. 느티나무의 약간은 노랗고 갈색인 잎들이 마당으로 내려와 새들의 먹이를 덮고 있다. 한꺼번에 다 먹어 버리면 깊은 겨울에 먹을 것이 모자랄 수도 있단다. 누워서 보니 저만큼에 또 먹이들이 보인다. 바람을 불러와 굴려서 그것을 덮어주러 간다. 나 혼자 보다는 이웃사촌 바람과 같이 가는 것이다. 뒹굴거리며.

 

그리고는 한곳에 모여 서로의 체온을 데워준다. 이른바 낙엽마을(落葉村)을 이룬다. 그 낙엽들은 어린 먹이들과 겨울초의 이불이 되기도 하고, 멀게는 퇴비가 되어 지력(地力)을 끌어올리는 자연의 도우미가 된다. 이처럼 낙엽이불은 겨울초들이 덮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덮어준다. 자기네끼리 체온을 유지하다 보면 그 따스한 기운이 이웃까지 데워주는 것이다.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지만 까짓것 대수인가? 세상을 따뜻하게 해 주는데 이기고 지고가 무슨 큰 의미이냐 말이다.

 

갈퀴로 걷어 논으로 던진다. 잠자고 있던 파란 새싹들이 부스스 눈을 뜨며 얼굴을 내민다. 아차 내가 괜히 깨웠구나~.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을 정도로 썩은 낙엽들은 모아서 다시 덮어준다. 논에 떨어진 낙엽들은 흙과 어우러져 거름이 될 것이고, 새싹을 덮어준 퇴비는 겨우내 새싹 친구들과 도란거리며 봄맞이 채비를 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고 이어지다가 봄을 맞을까. 이렇듯 겨울은 자는 듯해도 쉼 없이 흐른다. 새벽닭은 여전히 울고 하얀 서리도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나는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내게도 낙엽이불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이웃의 낙엽 이불이 되고도 싶지만 나는 너무 많이 부족하겠지. 나에게 있어 낙엽이불은 무엇일까? 인위적인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고 자연 그대로가 좋을 텐데 라는 생각에 이르니 인위적(人爲的)이라는 문구(文句)에 생각이 멈춘다. 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람들에게 거북하게 작용할까?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낙엽이불을 생각하며 천고마비의 계절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라면 인위적인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읽으면 한 권의 이익이 있고, 하루 책을 읽으면 하루의 이익이 있다 했다. 또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라는 말도 있으니 좋은 면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겨울 독서는 추위를 느끼지 않고 여행의 효과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나라의 세대·계층 간 갈등지수가 세계1위라고 한다. 자살률 1위와 함께 왜 이런 기록에서 1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생각으로는 갈등 해소의 방편으로 독서를 제안하고 싶다. 취미 삼아서 습관적으로 읽는 책은 그 어떤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 오죽했으면 예로부터 ‘밥 도둑과 책 도둑은 없다’는 말이 있었을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조정래 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시리즈를 읽은 후 ‘적어도 이 책들을 읽으면 세대 간의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특정 작가의 책이라기보다 우리 근대사의 무형적 경험이었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이 없는 국민이 되어간다는 말도 듣는다. 생각 없이 당리당략에만 열중인 정치인들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책을 읽고 내면을 넓히자. 인연은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과의 인연도 있다. 인위적으로라도 책과의 인연을 만들자. IT시대의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책은 많다. 새 책을 펼치면서 인쇄잉크 냄새를 반기고 다 읽고 덮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란~. 

 

생각해 보면 우리 개개인은 우주의 중심이기도 하고,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먼지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세상의 섭리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목적은 ‘나 자신에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내면(內面)을 다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의 엄청난 기여가 될 것이다. 우리가 미루지 않고 하는 독서가 한겨울을 따뜻하게 하는 낙엽이불이다. 아이 손잡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이웃을 만나는 뿌듯한 기쁨을 꿈꾸자.

 

그림입니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12.23 12:23 수정 2022.12.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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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