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어제가 성탄절이었습니다. 그제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어릴 적엔 이런 날이 되면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늘 며칠 전부터 ‘뭐하고 놀지?’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 날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날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안겼던 기억이 나니까 네다섯 살쯤 됐던 것 같습니다. 누나가 성탄절이라고 장난감 권총을 사줬습니다. 그 권총을 쏘며 놀던 시간은 여전히 느린 영상을 바라보듯 정신을 몽환 속으로 인도해 줍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고, 그 해 성탄절에는 누나가 손가락이 있는 가죽 장갑을 사줬습니다. 서울 사람이 다 된 느낌, 아니 어른이 다 된 느낌이었습니다. 벙어리 장갑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느낌은 오랫동안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선물은 좋기만 했습니다. 사는 동안 받은 선물은 많았겠지만 기억 속에 담겨진 사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일에 나태했던 것도 아닌데, 아쉽고 또 미안하기만 합니다.
지지난주 주말엔 철학아카데미에서 연말 강연회 겸 송년회에 참석했습니다. 선물을 두 가지 준비해 두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용기를 내서 일어섰습니다. “제가 선물을 두 개 준비했습니다. 퀴즈를 낼 테니, 답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해 주시면 이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쑥스러웠습니다.
“첫 번째 퀴즈입니다. 제 이름이 뭡니까?”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네, 선생님! 정답은요?” “이동용이요!” “감사합니다!” 하고 선물을 건넨 다음, “두 번째 퀴즈입니다. 이 이동용이는 키가 180이 넘는다 안 넘는다!” 이번엔 누군가가 웃음보를 터뜨렸고, 동시에 내 뒤에 있던 분이 “안 된다!” 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준비한 두 개의 선물을 무사히 전했고,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좋은 기억을 선사해 준 듯해서 보람찼습니다. 누군가를 웃게 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어떻게 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터였습니다. 퀴즈를 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준비한 선물이니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일어섰고 또 그렇게 입을 열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우연에 맡겼습니다. 그냥 입 다물고 있다가 그 선물들을 다시 집으로 가져 왔더라면 후회를 많이 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성탄절은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좋은 것 같습니다.
유학시절, 성탄절을 앞둔 어느 시점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우리 학과 학생들은 드레스덴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교수님은 박물관에서 벽면 하나 가득 채운 그림 앞으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그림은 이탈리아의 라파엘로 산티가 그린 〈시스티나의 마돈나〉라는 그림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아기 예수의 어른스러운 얼굴 표정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그 그림에서 어디선가 많이 보던 아기 천사 두 명을 발견하고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그 두 천사의 얼굴 표정이 모든 것을 폭로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두 천사의 우울한 표정, 그것이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가 전하는 이 그림의 진정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의 얼굴부터 관찰하지만, 화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곳에 두 가지의 인간적인 얼굴을 천사의 이미지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수업시간에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발표를 했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대로 그렇게 나의 생각을 담아 내 마음대로 설명에 임했지만, 교수님은 ‘좋은 선물을 줬다!’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제자는 역시 스승의 칭찬에 약하기만 했습니다. 그때도 마냥 웃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