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밝았다. 깜장 털 복슬복슬한 토끼가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눈망울을 반짝거리고 있다. 이런 새해 아침이 열리면 또 그리운 곳이 있다. 고향이다. 오늘날 80여 억 명으로 살아가는 현생인류(現生人類)는 150만 년 전 아프리카 적도(赤道) 남쪽 사바나 지방에서 탄생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서 지금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직립보행 사람은 약 3만 년 전에 탄생했고, 어느 정도의 정착지를 근거로 수렵·목축·농경 생활을 한 것은 1만여 년 전부터란다. 이 사람들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고, 슬기로운 사람 혹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생·멸·생(生·滅·生)한 사람의 숫자는 줄잡아 3백억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두 단어가 있다. 엄마(mother)와 고향(hometown)이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민족만큼 고향에 영혼을 집착하는 이들도 드물다. 민족의 동질성과 이념의 상극성을 품고 있는 휴전선(해방광복 후 38선)을 기준삼아 남과 북으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얽은 노래가, 1966년 저음의 마법사로 불린 오기택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온 <고향무정>이다. 구름도 새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북녘 땅, 다 같은 고향 땅을 오고 가지 못하는 역사의 현장~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 잡초에 묻혀있네 //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 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래 소리 / 멎은 지 오래 일세.
이 절절한 노랫말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실향민(失鄕民)은 아무도 없을 터다. 1절은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맘과 가지 못하는 그곳 산천경계(山川境界)의 허물어졌음을 상상한다. 2절은 지금은 그 누가 살고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갈갈한 호흡을 고른다. 오고 가지 못하는 남한(대한민국에서) 억지춘향(억지춘양)으로 떠밀리듯 넘어온, 38따라지들의 눈물과 한숨이 아롱진다. 여기 적은 38따라지는, 해방광복 이후와 6·25전쟁 1·4후퇴 당시 무조건 남쪽(자유)을 향하여 피난민 대열에 뒤따른 분들이 그들 간에 서로를 위무하는 공감 은어이다.
이 처절한 <고향무정>은 김운하(본명 김득봉)가 노랫말을 쓰고, 서영은이 멜로디를 엮었다. 김운하는 무인도라는 예명도 사용했다. 이 곡을 얽은 서영은은 코미디언 홀쭉이 서영춘의 친형이다. 그들 4형제 중 아래로 둘을 무궁화악극단 출신이다. 김운하의 손끝에서 작사된 노래는 남인수의 <항구의 청춘시>, 손인호의 <물새야 왜 우느냐>, 이미자의 <임이라 부르리까> 등이다. <고향무정> 노랫말이 눈물 덩어리로 응어리진 묵처럼 엉기어 여물게 한 사연은 이렇다.
때는 1966년 정초(正初), 김득봉은 이북 실향민들과 함께 눈 내리는 임진각 망배단에서 망향제(望鄕祭)를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1944년 자기 자신에게 남쪽으로 가기를 권했던, 친구 김승철의 아버지 김민규 교수를 생각하며 우수에 젖었다. 그 우수의 끝자락에 매달린 감흥이 이 곡의 노랫말이다. 김민규는 일본 명지대 문학부를 졸업한 평양 숭실대 교수였다. 1944년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던 때, 태평양전쟁에서 무조건 항복·패망한 1년 전이었다. 김 교수는 일본의 패망을 불러올 먹구름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그로부터 1년 뒤, 1945년 해방광복이 되었고, 38선이 그어지기 직전, 김승철과 김운하는 남쪽으로 왔단다. 그 서정과 서사가 북녘 땅을 무정한 고향 넋두리로 얽은 사연이다.
이 노래는 1966년에 발표되었는데, 1968년 같은 이름 영화의 주제곡으로 불리어진 후 1968년을 발표 시기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1965년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오기택의 최전성기는 1966년이다. 이즈음 영화 <영등포의 밤>, <아빠의 청춘> 주제가를 불렀고, 두 곡 다 대히트를 쳤다. <고향무정>도 이때 발표되었고, 영화는 2년 뒤에 만들어진다. <고향무정>의 인기는 <영등포의 밤>을 능가했단다. 그 시절 라디오를 틀면 오기택 노래가 나왔고, 서울 시내 전파사·레코드가게 등등 가는 곳마다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단다. 오기택의 회고담이다.
노랫말은 타관 땅을 떠도는 부평초 같은 나그네들의 가슴속을 후벼 판다. 어쩌면 객창(客窓)의 삶을 이처럼 실감나게 펼쳐놓을 수 있을까. 음미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립고 한 맺힌 추억 속을 헤매게 한다. 이 노래를 열창하고 나면 웬일인지 눈물이 글썽해진다. 부르면 부를수록 고향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선다. 우리들 영혼의 옹달샘 같은 그곳, 오기택은 고향 해남을 생각하면서 목청을 돋우었을 것이다. 1절과 2절 사이 낭송되던 중간대사도 서정이 넘친다. ‘구름도 울고 넘는/ 바람도 쉬어 넘는/ 높고 높은 저 산 아래/ 고향이 있었건만/ 아마도 지금은 폐허가 되었겠지/ 살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겠지...’
1966년 당시 25세, 오기택은 1943년 해남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여 3세를 전후하여 부모님과 사별했단다. 이후 해남중학교를 거쳐, 어려운 처지를 돌봐준 외삼촌께 의지하여 서울 성동공고를 졸업했다. 이후 우리나라 대중가요 100년사의 원로가수이며, 가수 고영준의 아버지 고복수가 경영하던 동화예술학원을 수료 후, 1961년 제1회 KBS 주최 직장인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였다. 그 후 1963년 <영등포의 밤>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다가 1967년 제2회 부산문화방송 10대가수상 수상하였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86∼1991년 일간스포츠 초청 연예인자선골프대회 6년 연속 우승, 1990년 싱가포르 렉스오픈대회에서 아마추어부문 1위도 하였다. 또한 1997년 1월에는 추자도 인근 무인도에서 낚시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구조되어 그 후유증으로 20여 년간 휄체어에 의존하여 살다가 2022년 하늘 여행을 떠난 예인이다. 총각으로 하늘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유산은 고향 해남에 있는 학교에 기증했단다. 오기택은 가수 박우철의 친삼촌, 오늘날 <연모>(이도저도 못하면서 사랑했었다. 앞이 캄캄 안보이지만~)를 절창하고 있는 박우철의 본명은 오영록이다.
설은 우리 민족의 가장 귀한 명절이다. 설날 아침에 입는 새 옷을 설빔이라고 한다. 세장(歲粧)이라고도 한다. 설날부터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묵은 것은 떨쳐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의미가 있다. 어렵던 시절, 명절을 계기로 새 옷 한 벌씩을 어른에게 봉양(奉養)하거나 후손들에게 입힌 조상들의 지혜다. 이때 어른에게는 바지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어린아이에게는 화사한 것, 부녀자에게는 치마저고리를 화려한 것으로 했다. 버선과 대님도 새것으로 했다.
설날의 다른 이름은 원일(元日)·원단(元旦)·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했는데,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신일(愼日)·달도(怛忉)라고 부르다가, 근대로 오면서 양력 1월1일을 신정(新正)으로,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으로 부르다가 근래에 설로 통칭한다. 설날이 언제부터 명명되고, 명절로 관습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중국의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 ‘신라인들이 원일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다.
섣달그믐날(음력 12월 30일)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俗信, 민간풍속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날에는 금기(禁忌) 사항도 많았다. 여자들의 대문 밖 출입을 금했다. 정월 대보름날까지다. 그래서 집안 하인을 대신 인사 보내기도 했었다. 바느질을 금했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까 봐 배려한 풍습이다. 문짝에 난 구멍을 창호지로 바르지 않았다. 문구멍을 통하여 복이 들어오도록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재(災)를 치우지 않았다. 불태운 재를 재물(財物)과 복(福)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곡식을 문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그 해의 흉풍년(凶豊年)과 연관이 있다고 여긴 탓이다.
<고향 무정> 유행가에 세시풍속을 얽으며, 2023년 대한민국의 강녕(康寧)을 기원한다. 실향(失鄕)·망향(望鄕)·출향(出鄕)·타향(他鄕)에서, 그분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이 안녕하기를 앙망한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