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선물膳物

김태식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운 마음들이 앞서긴 하겠지만 요즈음의 세계적인 불경기 탓에 서민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두둑한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물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전해 주었던 명절날의 선물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순수하다. 동네 어르신에게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계란 몇 개를 드리는 일. 혹은 평소에 잘 만들지 않던 귀한 음식을 하면 이웃 어르신 먼저 드시라고 한 접시 대접하는 등이었다. 

 

섣달그믐날에 이웃 사람들 몇몇이 모여 막걸리라도 한잔하면서 한 해를 보내는 감회를 얘기했다. 이것은 선물이라기보다는 인정미였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 있고 이웃 간의 인정이 흐르고 있다는 삶의 증표였다. 

 

선물은 부담이 없어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마음이 편하다. 가벼운 선물을 하기로는 일본사람이 대표적이다. 일본인 특유의 검소함과 근면성이 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 우선이다. 

 

내가 일본에 근무할 때 그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명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동료 직원들이 간단한 출장을 다녀와도 반드시 선물을 한다. 다녀온 지방의 특산물을 간단하게 주기도 하고 외국을 다녀왔다면 그곳을 상징하는 먹을거리 등으로 인사를 하는 정도이다. 

 

결혼식이나 개업 때에도 참석하는 사람의 선물은 간단하게 성의만 표시하면 충분하다. 돈의 많고 적음이나 양은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의껏 하면 되고 적지만 깊은 정이 오간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물 주고받기는 그 기본정신이 많이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다. 간혹 사람들은 받을 사람들의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싸고 좋은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하청업체에서 모기업의 간부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보다 많은 일을 받기 위해서, 극소수의 공무원들은 진급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가성을 바라고 주기도 한다. 

 

분명 사과 상자를 주었다는데 그 내용물은 오만 원권 지폐가 가득했다. 한때 사과상자에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지 직접 실험하는 광경이 뉴스로 전해지기도 했다. 어쩌다 조사를 받다 보면 이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어 곤란해지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한때 어느 전직 공직자에게 주었던 그림 선물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주었다고 지목된 사람은 그러한 적이 없다고 잡아때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선물이라면 발뺌할 일은 없을 텐데 무엇인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나는 연말연시를 맞아 좋은 선물을 두 개 받았다. 하나는 서예가인 대학 후배의 부인이 몇몇 동문들에게 직접 써서 새해가 밝아 오면 보내는 연하장이다. 몇 년째 받고 있는데 해마다 좋은 덕담이 담긴 내용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선물이다. 보관철을 따로 만들어 간간이 다시 보기도 한다.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내용들이므로 공부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었다. 어느 지인이 언젠가 사군자를 배우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작품을 봤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보내준 매화그림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門外漢인지라 그림의 수준에 대해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그분이 직접 그렸고 정성을 담아 보낸 그림 연하장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었다. 돈이 오간 것도 아니고 나에게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이 선물들이야말로 오래도록 기억될 진정한 선물이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1.03 11:19 수정 2023.01.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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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