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는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 특정도시에서 그것도 올들어 세 번이나 일어났다. 말세론자들의 주장이 믿어질 만큼 오늘날 한국사회의 윤리도덕이 무너진 사회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부모가 가장 사랑해야 할 자기 자녀를 학대하고, 끔찍하게 살해하여 인간의 행동이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죽은 사체를 냉동시키고 또 방안에 11개월 동안 이불에 싸서 미이라 상태로 방치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다.
그 가해 장본인이 바로 목회자였다니 참으로 말세가 온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 사건은 다수의 선량한 목회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어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보고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이 흔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먼저 자신을 다스리고 그 다음 가정과 나라의 순으로 다스려 나가야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 절실해지는 때이다.
사회가 막바지로 치닫는 것 같다.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유교 질서가 무너지고 민주적인 질서로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물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사회풍토와 맞물려 일어난 사회병리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누구의 잘못을 비난하기 이전에 현시대 한국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 고전에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등 계모 학대를 그린 고소설이 있다. 서양에서의 계모가 본처의 자녀를 학대의 동화는 신데렐라, 백설 공주 이야기가 있다. 옛날부터 이러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자기 핏줄이 아닌 전처의 자녀를 키워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고, 계모를 둔 가정에서 전처의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맨 처음 일어난 사건은 전처의 자녀를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학교도 보내지 않고 감금하고 학대한 사건이었다. 가정이 빈한한데도 문제는 있겠지만 옛날이야기에서는 새어머니가 가해자였는데 현대판 사건들은 새어머니가 아니라 모두 아버지가 가해자였다, 모두 부성 상실의 시대가 빚어진 현상들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여권의 신장으로 아버지의 가정적인 지위가 낮아졌기 때문에 옛날이야기에서는 가정의 권력이 어머니가 낮았기 때문에 계모에 의해 일어났지만 오늘날은 여권신장으로 여성이 가정 권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를 학대하는 양상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래서 두 번째 사건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자녀의 시신을 도막을 내고 냉동실에 처넣는 참으로 인간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잔인한 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많이 배운 박사이면서 목회자인 사회지도층의 인사가 자녀를 학대한 사건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전통윤리의 가치관의 단절이다. 사회가 병들어버린 것이다. 가정교육이 부재한 탓이다. 우리 교육자도 심히 반성을 해야 할 때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가 삭막해진 탓이다.
가장 기본인 나부터 나와 내 자녀, 내 이웃을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남과 남이 사랑으로 결합하지 않고 물질이라는 조건으로 결합하여 가정이 이루어졌으니 그러한 조건 속에서 태어난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또 그 메마른 정서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또 그러할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이가 나중에 자라 어른이 되면 문제 가정의 장본인이 된다.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자기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르고 자기가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것을 잠재적으로 학습하고 분노만 키웠으니 당연이 자녀에게 자기가 배운 대로 분노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 지금 사건의 장본인들은 7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가치를 좇기 위해 집착하고 허덕이며 살아오느냐고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 못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이다.
이것으로 보아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우치게 한다. 산업화 과정 속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자녀를 학교에 보내 키우고 그 사람들이 교육자로 교육에 종사하는 시대인 만큼 경쟁의식밖에 없어 학교 교육을 불신하고 당하는 등 서로 불신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학교 교육은 지식의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사랑을 전재로 한 인간애 교육이 되어야 함을 깨우치게 한다. 사랑은 교과서에 없다.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우선시해야 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말고 나만 잘 살고 나만 출세하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빚어낸 사건이다. 나밖에 모르는 것은 인간적이기 보다는 동물적이다.
이러한 사고의 밑바탕에는 물질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긴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 어찌할 수 없는 오늘날의 풍속도일 수밖에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잠재적인 교육과정의 힘이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 위력을 실감케 하는 현상이다. 앞으로 이러한 유사한 사건은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다.
사회 도처에 일어나가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이 무너졌다. 아버지조차도 믿을 수가 없으니 믿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비극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니 종교 지도자도 교육자도 누가 믿겠는가. 학교현장에서도 자신만의 출세를 급급히는 물질 지향, 권력 지향의 세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인간답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가정과 내 이웃을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우리 교육자가 이루어내야 할 때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언론종사들은 어떠한가. 저 사건은 나와 무관한 사건으로 여과 없이 남의 인권은 도외시하고 남의 치부까지 낱낱이 파헤쳐 보도에 급급하고, 사건과 관련된 공무원들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느냐 정신이 없다. 또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학교에 장기 결석자를 방치한 교육기관이 잘못인 양 언론은 보도하고, 학교는 그것을 그렇게 방치한 것에 대한 발뺌의 증거 갖추기에 급급히는 등 불똥이 튀면 그 불똥을 끄느냐 정신이 없다. 나만 빠져나가기 위해 장기결석생 상담 장부 만들기 등 형식적인 책임회피에 급급하지 말고 정말 사랑으로 보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가정에서 학대받고 고통스러운 어린이가 정신적으로나마 안식처가 되어 주는 학교를 만들고, 잠시나마 안식과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랑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똥이 가득 차서 위생 상태가 불결한 70년대 외양간에서 자란 소가 송아지를 낳아 잘 바르게 길러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미 병균이 득실한 외양간의 송아지는 병든 소에 의해 학대와 살해가 예견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외양간의 송아지가 갈 곳을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지혜가 필요하다. 서로 똥이 더럽다고 피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묻은 똥부터 깨끗하게 똥을 치우고 방역을 하여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신경을 쏟을 때이다.
우리 모두가 70년대를 거쳐 온 환자들이다. 외형으로 깨끗한 외양간으로 변모됐지만 물질로 오염된 환경 속에서 병들어 있다. 종교 지도자 등 사회지도층까지 병들어 있음은 병을 치유할 의사도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치료약은 인간에 대한 사랑뿐이다. 먼저 자기부터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실천하여 스스로 자가 치료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살아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깊이 생각해볼 때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