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일요일의 평화

신연강

 

 

 

주말이란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휴식의 시간. 숙면하고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온전히 가진다면, 지친 몸도 다스리고 소진된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그런 시간이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 같다. 핵무기를 들먹이며 ‘핵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골리앗의 꼴 보기 싫은 모습을 안 봐도 될 테고, 핵 개발에 미쳐서 ‘공존과 상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불량한 이웃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작은 평화’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의 평화’를 날려버리는 존재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망하던 일요일의 작은 평화가 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핵무기 아닌 ‘작은 글 하나’가 광풍을 일으켜 온화한 기운을 휘몰아가고,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번뜩임이 생기더니 몸에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와 시청하게 된 인문학 강의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글이 담겨있었다. 두 명의 여배우가 낭송하는 멋들어진 시임에도, 긴 시간 동안 유튜브 조회는 매우 미미했다.

 

하지만 그 시는 예사롭지 않기는 물론이고, 그런 시를 쓰는 존재가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맙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난 듯 반발하듯 고성을 지르듯 두 여배우가 시를 낭송한다. 곡예 줄을 타는 듯한 그의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면, 영상을 보고 듣는 독자는 아마도 그와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우의 멋진 낭송을 통해, 일요일 아침에 귀를 홀리고 마음을 움켜쥐었던 그 시를, 시집을 뒤져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가을이 오면

어제 굶은 자를 하루 더 굶게 하고

오래된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고

슬픈 자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 주소서.

부자에게선 재물을 빼앗고

학자에게는 치매를 내리소서.

재물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소서.

육상 선수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그 뼈와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수도자들과 사제들에게는

금욕의 덧없음을 알게 하소서.

전쟁을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해서

도처에 분쟁과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게 하소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써 온 자들은

서정시의 역겨움을 깨닫게 해서

이제 그만 붓을 꺾게 하소서.

 

-중략-

 

다만 고요 속에서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는

저 무수한 멸망과 죽음들이

이 가을에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1. 장석주, ‘가을의 시’ 부분-

 

 

일요일의 작은 평화는 끝났다. 가로수는 발갛고 노랗게 물들고, 낙엽은 바람을 타고 유영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시를 통한 번뜩임과 지혜의 생명수가 메마른 마음을 적신다면 평화는 없어도 좋으리라. 다만, 하나의 시가 우주를 담고, 한 줄 문구가 삶의 에센스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발걸음이 눈을 감고 마음을 닫은 채로 그냥 지나침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은 절대 이익을 낼 수 없는 밑지는 일을 자꾸만 해간다. 그는 다수의 신경을 거스르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을 자꾸만 써낸다. 일상의 편안함을 걷어내고,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글귀로 마음을 자극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악역을 자처한다. 그러함에도, 그가 우주를 담아내고 소우주를 노래하지 않는다면, 대지는 마르고 나무는 초췌할 것이다. 바위는 갈라지고 짐승은 미쳐 날뛸 것이다. 시인이 밑지는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급기야 지구는 신음하며 돌 것이다.

 

아무려나, 일요일의 평화는 깨져도 좋다. 그러나 우주가 담기고 소우주가 새겨진 글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이 현실은, 일상의 안락과 쾌락과 몽환에 젖은 우리의 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일요일 오후 햇살이 검게 그을려놓은 커피를 나는 목으로 넘긴다. 

 

 * 시집을 구하는 동안 한 계절이 흘렀고, 그 사이 이런저런 소소한 일 속에 묻혔던 원고를 최근에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

 

작성 2023.01.13 12:01 수정 2023.01.13 12: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현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