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갚음이란 인간이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어린이 같은 행동이지만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동물적이고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반대되는 미움의 감정 표현으로 분노의 감정을 오랫동안 갖고 있다가 터뜨리는 폭력의 일종인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앙갚음의 의지는 강한 법이다.
우리 역사에서 비일비재한 사건의 내막은 바로 앙갚음이었다. 패거리를 지어 앙갚음을 했던 것이 당파싸움이었다. 상대편을 파멸로 이끌고 그러다가 끝내 죽이기까지 하고 그러면 그것이 원한이 되어 당한 자는 복수심을 키워 다시 보복하고 끊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적 사건을 교훈 삼아 다시는 그러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또다시 반복된다. 옛날부터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연극, 영화 등 예술작품의 주테마가 앙갚음이었다. 또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내란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도 이러한 앙갚음 때문에 끊일질 않는다.
종교는 이러한 앙갚음 심리를 용서와 사랑으로 포용하라고 가르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대부분은 이 앙갚음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정치보복, 보복운전 등등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은 사랑과 용서라는 선행 보다는 앙갚음이라는 악행을 행하기가 쉽다는 인간의 폭력적 성향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원시시대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연에 대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가능했다.
짐승을 돌도끼나, 돌창과 돌칼로 잡아 생존을 이어가다가 불의 발견과 함께 철과 청동으로 성능이 좋은 무기와 농기구가 발달되어 생산력이 향상되었다. 20세기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인간의 욕심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사회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이 극에 달해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재앙으로 자연의 되갚음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미래를 예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폭력적인 인간의 속성과 자연과의 관계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미래사회의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다. 미래의 국운을 좌우하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에 따라 국운도 달라진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의 앞날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듯이 희망을 심고 가꾸어나가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들이다.
공교육을 비난하고 사교육으로 치닫는 것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교육을 잘못 받은 학부모의 앙갚음 때문이다. 앙갚음의 뒷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 자기가 성취하고픈 욕망이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지당하거나 달성하지 못했을 때 자신의 반성보다는 저지를 한 당사자에게 앙갚음의 심리가 작용한다. 우리말에 “두고 보자”는 말은 바로 앙갚음하겠다는 말이다. 만약 권력관계가 뒤바뀌면 앙갚음을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현장에서도 윗사람에게 굽실거리는 것도 마음속에 앙갚음의 심리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아부는 극도의 앙갚음 의지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 권력자에서 지나치게 굽실거렸던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면 보상심리로 앙갚음을 하게 된다.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 귀양길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머무르다가 바위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밝힌 송시열이 글씐바위에 새긴 글도 임금님께 말 한마디 잘못하여 앙갚음으로 그리되었다고 적혀 있다.
민주사회 학교현장에서 아랫사람이 건설적인 의견을 내세우면 무능력한 관리자는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무조건 옳은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재적인 권력으로 의견을 제시한 교사에 대해 불이익이라는 앙갚음을 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 학교 일 열심히 하다가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근무평정을 나쁜 점수를 주어 앙갚음하는 사례가 있다. 학교 관리자에게 하고 싶은 정당한 의견이었어도 말 못하고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굽신거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사회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현장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하면 자기의 권한 행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을까 하여 각종 학교 규칙을 입안할 때 교사들에게 암묵적인 폭력을 행사하여 관리자가 유리한 독재조항을 넣어 놓고 ‘선생님들의 민주적인 의사를 반영하여 입안했노라“고 떠벌리며 자기 합리화하는 사례가 많다. 자신의 민주적인 의사를 묵살한 암묵적 폭력으로 통과된 형식적인 규칙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러한 규칙은 만약 사건이 벌어졌을 때 유리한 자기변명을 하기 위한 비열한 권력의지가 숨어 있다. 교사들을 짓밟아서 그 공로로 승진해놓고 교사들을 자기의 몸종 부려먹듯이 하는 일이나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자에게 당한 것을 당파싸움처럼 앙갚음으로 열심히 교사로서 직분을 다한 사람을 앙갚음하여 불이익을 주고 따뜻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비열한 관리자는 이 나라 앞날을 위해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앙갚음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앙갚음은 다시 몇 배의 되갚음으로 오기 마련이다. 부질없는 관리자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베풀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밖에서 볼 때는 유능한 관리자 중에는 많은 교사들의 눈물로 이루어놓은 유능한 딱지를 받은 관리자가 많다. 교사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관리자는 어느 날 피눈물을 흘릴 날이 반드시 오게 되는 법이다. 앙갚음의 고리를 끊어야 교육현장이 바로 선다.
당신은 이 나라 국민의 심부름꾼의 자리에 불과하다. 설혹 앙갚음으로 핍박을 받더라도 용서와 사랑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는 교직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부당한 보복인사보다는 오히려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를 주는 관용과 포용하는 스승상 본보기가 되어 교사와 학부모가 진실로 존경받는 관리자가 되길 바란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