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카페에서 홀로 앉아 차를 마실 때가 있다. 눈 들어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그들을 무심코 바라볼 때가 있다. 그냥 스치는 풍경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예전 이성의 친구를 보는 듯하고 또는, 평소 바랬던 이상형이 눈에 확 들어올 때도 있다.
이처럼 샤를 보들레르에게는 도심 속 군중의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시가 있다. 『악의 꽃』 중에 「지나가는 여인에게」 의 시다. 시의 일부를 보자.
(上略)
“날렵하고 의젓하게, 조각 같은 그 다리로,
나는 마셨다, 실성한 사람처럼 몸을 떨며,
태풍이 싹트는 창백한 하늘, 그녀의 눈에서,
마음 녹이는 달콤함, 뇌쇄적인 쾌락을.”
(下略)
“실성한 사람처럼 몸을 떨며”, “얼을 빼는 감미로움과 애를 태우는 쾌락을” 등을 보면 도시의 인파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여인에게 느끼는 감정, 누구든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도심 속 거리에서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냉정함이 흐르는 도시의 거리마저도 자신을 사랑케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사랑에 낚여서 꿈을 꾸는 듯한, 두뇌의 화학적 작용에 의한 감정들, 때론, 성적인 느낌까지도 . . .
누구든 특정된 대상이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개별적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반해 일반적인 사랑의 슬픔, 아픔, 아름다움 등을 얘기할 때는 보편적 사랑이라 할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류 전체를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 즉 사람들 개개인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된다”라고 했다, 인류를 사랑하면서 개별적으로 덜 사랑하게 된다는 농담 같은 말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물론 그럴 때가 있기도 하다. 개별적 사랑과 보편적 사랑과의 간극이다.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에서 오는 사랑의 변주곡이라고 할까.
어느 시절이고 아름답지 않은 시절은 없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젊은 시절이나 나이 듦에서 하는 사랑은 눈부시게 황홀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감정은 세대와 나이의 차이를 횡단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그릇에 사랑을 담는 것, 일상적인 생활에서 자꾸 싹이 튼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면 그것을 사랑의 사치라고 할 수 있을까? 개별적, 보편적 사랑을 떠나서 말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온 정성 쏟아붓고 절실히 그리워했던 사랑의 감정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시간과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돌아볼 때 알 수 있는 일이다. 젊고 예쁜 시절에는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 욕구가 앞설 때이기에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이 넘친다. 왜냐면,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고 상대를 위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랑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변화가 생긴다. 특히 그토록 좋아서 사랑한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서로에 대한 불신감 등에서 오는 사랑의 감정은 흔들리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랑의 자기부정 속에서 행복과 불행은 교차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나 사랑은 낭만과 불안감의 양가적 감정이 대립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 사랑하고, 또는 결혼해서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처음과 같은 행복한 사랑의 감정을 갖기 힘들다. 그것은 경제적 관념과 주변의 환경 등에서 오는 갈등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외 예상치 못한 돌발적이고 급작스런 상황들이 연출될 때 그러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에서 오는 아픔은 너무나 거친 파도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사랑은 행복과 불행의 지속적인 교차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갈등에서 오는 정서적 불안감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미워지기도 하고 때론 이혼도 한다. 이럴 때 인간의 감정은 끝없이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된다. 요즘은 육아 비용의 부담감에서 오는 압박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오는 인구 부족은 사회의 많은 불안감을 초래하기도 한다. 딩크족 DINK 族이 그 한 예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 이래 남녀의 사랑은 겨울의 동짓날 밤처럼 짧고 이별의 아픔은 하짓날 낮처럼 긴지도 모른다. 감정이 남아도는 잉여의 시대임과 동시에 한편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탈 감정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라? 라는 물음표 앞에 사랑의 시작과 끝, 상처와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왜 식어가는 것일까? 식지 않는 사랑의 열정은 어떻게 성숙시킬 수 있을까? 감정에 치우쳐서 판단력을 잃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되겠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감정 한 알 한 톨 잘 추슬러 신뢰를 쌓는다면, 사랑은 예술로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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