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역사의 현장인 거제도 장문포왜성을 답사했다. 약 20년 전 현장답사 시에는 장문포왜성을 '군항포왜성'이라고 했었다. 성 아래 군항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에는 접근로도 거의 없는 곳에 나무가 우겨져 있어 성의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2023년 1월 다시 찾은 이 왜성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했다. 군항포 마을로 내려가기 전에 1차선 외길로 800미터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새로 설치한 "장문포왜성"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중간중간 벌목을 하여 왜성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돌로 쌓은 성곽이 비스듬한 기울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왜성의 축성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강화협상 시기였던 1594년 7월(이하 날짜는 음력)부터 경상도 해안에서 왜군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군은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일대를 중심으로 연안 각 포구에 집을 짓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이렇게 되자 도원수 권율은 한산도에 진을 치고 있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에게 비밀 문건을 보내 9월 27일에 군사를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이날 아침 거북선을 포함한 50여 척의 전선을 동원하여 적도(통영시 화도)에서 곽재우, 김덕령, 한명련, 주몽룡 등 육군장들을 승선시킨 후, 28일에는 견내량을 지나 흉도(거제시 사등면 오량리 고개도)로 진출했다. 흉도에서 거점을 확보한 수륙 합동군은 9월 29일 장문포의 적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수륙 합동군은 장문포에서 적선 2척을 불태웠으나 적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응전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 함대는 그날 밤 칠천량(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옥계리)으로 돌아와 밤을 새웠다. 10월 1일 칠천량을 나선 이순신 장군은 장문포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만나 합세했다. 이들은 장문포에 머물게 하고, 이순신 장군은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과 함께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 있는 적을 치러 출항했다. 그러나 그곳의 적들도 바다로 나와 항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영등포해전이라고 명명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10월 2일과 3일에는 선봉선 30여 척을 장문포로 보내 싸움을 걸었으나 적도들은 여전히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10월 4일 이순신 장군은 곽재우, 김덕령 등과 약속한 후 수백 명의 육전대를 편성하여 장문포왜성으로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아울러 전선을 장문포로 보내 포구 안으로 들락거리면서 계속 싸움을 걸었다.
그날 저녁나절에 아군이 바다와 육지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면서 호응하자 놀란 적들이 갈팡질팡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날 밤 이순신 함대는 다시 칠천량으로 물러나 밤을 새웠다.
10월 6일에도 장문포를 공격했으나, 적은 "명나라와 더불어 화친하고자 하오니 싸울 생각이 없다"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성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날 영등포에 있던 왜군 1명이 투항해 왔고, 이순신 함대는 견내량의 흉도로 철수했다. 흉도에서 육군장들을 하선시키고 이순신함대는 10월 8일 한산도로 복귀했다.
장문포해전은 큰 전과를 올린 전투는 아니지만, 한산도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수군이 곽재우, 한명련 등이 지휘하는 육군과 합동작전을 펼쳐 왜군을 공격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해병대의 효시라고 할 육전대를 편성하여 상륙작전을 펼친 것은 임진왜란 전사에서 평가할 만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조선수군이 장문포 상륙작전을 펼친 1594년 음력 10월 4일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11월 15일이 된다. 이날을 우리나라 해병대 창립기념일로 정할 것을 해병대사령부와 국방부에 건의한다. 물론 지금의 해병대는 6.25 직전인 1949년 4월 15일 설립되었다. 하지만 해병대의 역사는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문포상륙작전의 사료가 있으므로 창립기념일을 11월 15일로 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전에도 필자가 이런 건의를 했으나 창립기념일이 11월 11일인 해군과의 관계 등 구차한 이유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에는 해병대전우회가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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