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먼드 클레비 카버(Raymond Clevie Carver, 1938~ 1988)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쓰겠다"고 천명한 미 대륙의 국민시인 워즈워스 이후 일상어로 작품을 쓰는 데 성공한 이백 년만의 작가로 미국 문학사는 기록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스스로 레이먼드의 팬이라고 말한 바 있는 미국의 '안톤 체호프'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단편집 대성당의 마지막 12번째 작품 '대성당'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아내의 오래된 맹인 친구가 집에 와서 자고 간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역까지 마중 나가야 하는 것도, 집에 맹인이 온다는 것도 달갑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10여 년 전 맹인에게 고용되어 일을 했고 그 후 목소리 녹음을 한 음성테이프를 우편으로 주고받으며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고 어쩔 수가 없이 맹인 손님을 맞기로 했다.
맹인은 생각과는 달리 체구가 건장하고 턱수염을 길렀으며 목소리가 크고 호탕했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맹인을 관찰하고 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보통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맹인을 대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은 소파에 앉아있는데 아내는 먼저 잠이 들고 나와 맹인은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서 대성당을 소개하는데, 맹인에게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 감이 오느냐고 물으며 그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맹인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성당을 짓는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그 작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군. 그런 식이라면 이보게,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맹인은 티비에 나오는 대사를 가져다가 말을 하면서 두꺼운 종이와 팬을 가져와서 그게 대성당을 그려보라고 했다. 대성당을 그리는 동안 그는 눈을 감았고 맹인의 손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마치 허공에 대성당을 짓기 위해 벽돌을 얹던 건축가처럼 두 사람의 손은 종이 위에서 대성당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집안에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눈으로 본다고 해서 상대를 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맹인에게서 배운다. 자신만의 생각에서 고립된 채 가장 가까운 아내의 마음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남자가 자신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충만한 무엇인가를 맹인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주인공이 마지막에 외친 말이다. 그렇다.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겉만 보고 그것도 일부만을 보고 판단하는 속을 보지 못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급함과 편협함을 말하고 있다. 소설 속의 맹인은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대성당의 크고 웅장함을 두 눈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주고 있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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