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나이가 든다는 것

고석근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형수’가 되는 일이다.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죄수, 그에게 산해진미가 맛있겠는가? 그는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보낸다. 그는 언제나 여생(餘生), 죽을 때까지 남은 생애를 생각한다.

 

젊었을 적에 앞으로 살날이 1, 2십 년 남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겠는가?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절망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는 사형수가 된 주인공, 뫼르소가 나온다. 그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사형 집행자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비로소 죽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중얼거린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찬란하게 빛나게 된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붙어 있기에, 어느 것 하나가 빛나면 다른 것도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엄마의 죽음에 무심했었다. 아니, 모든 인간의 죽음, 삶에 무심했었다. 그래서 그는 판사가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도 무심했던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의 부조리에 절망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생생하게 깨어난 것이다. ‘감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작은 창문을 통해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생과 깊이 교류하는 자신,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 자신을 보았다. 남아 있는 날을 그렇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매 순간을 깊이 음미하며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이 들어 사형수가 된 노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얼마 전에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동창한테 갔다가 관을 주문하는 전화 목소리를 들었다.  

 

입관 체험을 위해 관을 주문한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관에 들어가 보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나는 명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마음이 고요하게 되면, 내 몸은 허공이 되는 듯하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마음, 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명상에서 벗어나면 다시 죽음의 잿빛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떠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반드시 자신의 ‘소명(召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명은 하늘, 신이 내게 준 임무다. 이승에서 반드시 해내야 할 나의 일이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소명이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이 소명을 알려면 항상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한다. 한평생 밖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나이가 들게 되면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소명을 알고 살아가면, 삶이 빛나게 된다. 삶이 빛나면 죽음도 빛나게 된다.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1.19 11:20 수정 2023.01.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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