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X 성염색체는 지고지순하고 수동적이지 않았다. 삼천 년 전에도 그랬다. 자주적이고 적극적이며 주체적인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당당하게 노래한 이름 모를 여성들의 노래가 지금도 우리를 환희에 빠트린다. 공자가 엮은 ‘시경’에 나오는 ‘치마를 걷고’라는 시는 지금 읽어도 사이다 한 사발 들이켠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사회이었을 삼천 년 전 여성의 노래 속에는 도발적이고 당당한 사랑 이야기가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나이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예나 지금이나 남녀의 사랑은 때론 역동적이고 때론 사소하다. 누가 주도권을 쥐었든 간에 약자와 강자가 있기 마련이다. 간혹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거라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로망이거나 현실을 망각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주고받아야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이 된다. 남성 중심 사회의 농경시대에는 여성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함을 기대할 수 없었을뿐더러 사랑이라는 본능도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차고 솔직하고 대담한 XX 성염색체를 가진 삼천 년 전 여성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야 정신 나간 바보 같은 놈아”하면서 남성을 조롱하며 소리친다.
남자들과 운동장에서 말뚝박기하는 여학생 못지않게 통쾌하지 않은가. 검은 선글라스 쓰고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는 여성같이 멋있지 않은가. 정의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바꾼 철의 여인처럼 당당하지 않은가. 삼천 년 전 제도나 관습에는 약자지만 사랑에는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자존감에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지 마는지 뜨뜻미지근한 남자의 줏대 없는 감정에 과감하게 상처를 입히고 바보 멍청이라고 일갈할 수 있는 여성이라면 제 밥벌이는 충분히 하고 제 앞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자에게 인생을 기대 기생충처럼 무임승차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건 페미니즘이라고 욕할 필요도 없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행동일 뿐이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며 남자라는 권력에 아부하거나 기대지 않는 존엄성의 회복이다.
요즘 여성들처럼 “사랑하든지 헤어지든지 둘 중 선택해”라는 과감한 멘트로 결정권을 남성에게 준 것 같지만 사실은 바보 멍청이처럼 결단력 없고 우유부단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양성평등을 갈망한 인간적인 외침일 것이다. 약자로 살아야 하는 여성의 반란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타고난 사람마다 심성이 다르지만 억눌린 감정을 제대로 표출할 줄 아는 당찬 여성의 외침이다. 삼천 년 전 여성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지배자인 남성들에 대한 항거의 대리만족을 누렸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주관적이고 주체적이어야 맛이 나는 법이 아니던가. 사랑에는 나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강렬하고 짜릿한 감정이란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감정보다 내 감정에 충실할 때 그 진가가 빛나는 법이 아니던가.
삼천 년 전 여자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치마를 걷지 않았을 것이다. 치마를 걷어 다리를 보여주는 것은 대단한 용기며 숨겨야 할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과도한 애정 표현이다. 보수적인 고대 사회에서 음탕한 여인으로 몰릴 수 있는 그녀의 사랑법은 그래도 더욱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금기에 대한 인간의 사회적 감정은 표현하면 할수록 그 맛이 달콤하지 않던가. 그것은 자연적이면서 과감한 사유다.
저 건너편 강에 있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녀가 치마를 걷고 건너서 널 만나겠으니 넌 반드시 날 사랑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그래도 남자가 소극적이고 별 반응이 없자 그녀는 화가 잔뜩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자존심이 세고 당당하고 적극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바보 멍청이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하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일갈한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는 널리고 널렸으니 아쉬운 것 없다고 소리친다.
‘치마를 걷고’는 청양고추 같은 매운 시의 맛이 난다. 먹을 땐 매워서 입 밖으로 입김을 후후 뱉어내지만 먹고 나면 개운하고 깔끔한 그런 맛의 시다. 사랑은 그녀처럼 해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현대에도 여성은 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폭력이나 성 착취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약한 존재라는 인식은 여전하며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여성의 인권을 위협하는 관습과 악습으로 행하는 여성폭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삼천 년 전 한 여성의 시는 시대를 넘어 많은 사유를 하게 한다. 그녀처럼 당당한 여성이라면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가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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