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적과의 동침

고석근

도대체가 진정한 ‘적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고귀한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다. 고귀한 인간은 적에게 이미 얼마나 많은 존경을 품고 있는 것인지! 이러한 존경심은 바로 사랑에 이르는 가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에서

 

 

가끔 가는 식당이 있다. 가성비가 좋다. 그런데 주인만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는 흡사 로봇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아니? 이렇게 맛있고 값싸게 하는 식당에서 왜 저러나?’ 나는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 그가 인간에서 로봇으로 진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진상손님’ 때문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진상손님을 인간으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쳐갔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그의 목소리가 기계음으로 변하고 행동도 기계처럼 작동하게 되었을 것이다. 계산을 하며 로봇 같은 그의 얼굴을 본다. 그의 딱딱한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그래서 우리는 되도록 적을 보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모두 모래알 같은 ‘홀로’가 되어 버렸다. 서로 만나면 버석거리는 모래알들.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어도 도무지 하나의 마음이 되지 않는다. 돌아오면 허전한 만남들.

 

우리는 자꾸만 외로워진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사회적 존재라 홀로가 되면 당연히 사는 게 힘들어진다. 그럼 어떻게 하면 다시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니체의 조언대로 적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자라면서 남에게 의존한다. 아기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죽는다. 그 과정에서 아기는 선악 개념이 생겨난다. 나에게 좋으면 선, 나쁘면 악. 그런데 사실은 선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게 하는 온갖 바이러스들은 나쁜가?

 

인간은 그들을 통해 면역력이 생겨 강한 몸이 되어 간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질병에 걸려 죽게 된다. 적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인간은 자라면서 이 이치를 몸으로 배워가야 한다. 언제라도 적이 나타나면 그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인간이 성숙한 인간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혹독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 수련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우리는 갑각류로 퇴화한다. 딱딱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여린 속살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로봇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공감의 능력으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이 공감의 능력이 버거운 것이다. 인간과 좀비의 차이는 이 공감의 능력이다. 

 

감정이 아예 사라진 인간, 좀비. 우리는 점점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좀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안의 감정이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늘 잠자리가 뒤숭숭하고, 사는 게 공허하다.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추상적인 인류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싸우면서 커야 한다. 적을 미워하고 사랑하며... 드디어 적을 존경할 수 있을 때까지.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1.26 12:23 수정 2023.01.2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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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