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하고 오묘한 듯한 삶은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 이 두 단어로 표현되는 양자는 상호 간 경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순간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기도 하고, 한편으로 각각의 영역에 속한 것을 확고하게 가두기도 한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들을 수 있거나, 또는 일상에서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툭, 던지는 말, ‘다 부질없어’에는 체념과 상실이 내포돼 있지만, 또 다른 넘어섬과 극복의 역설이 존재한다. 좀 더 잘해보려고, 혹은 어떻게든 이루거나 성취해보려 하지만 종국에 포기하거나 체념할 때 ‘다, 부질없는 일이야’라며 내던지면, 조금은 위안이 되거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이 말속에는 고통과 회한을 뭉뚱그려 지나는 한 단위로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넘어섬의 미학이 존재한다. 우리 고유의 가락 ‘아리랑’에서 듣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대목이나,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 소설의 주인공이 내뱉는 “다 그런 거지, 뭐(So it goes)”에서도 넘어섬의 미학을 볼 수 있다.
최근 책을 읽으며 발견한 재미있는 것은 ‘목적 없는 독서’에 관한 내용이었다. 헌책방의 주인장 윤성근의 <이상한 나라의 책 읽기>라는 책을 손에 잡게 되었다. 전에 그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이번 책을 읽어가며 눈길 멈추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독자는 대개 어떤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독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아무런 목적이나 사심 없이 책을 읽을 때 오히려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로베르토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제시한다. 이 책을 제목처럼 ‘특성 없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책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뭐라 평하는 것이 적합지 않겠지만, 책방 주인의 특이점은 매우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는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먼저 작가의 이름이 멋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독일계 이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긴장감이 느껴지고 카랑카랑함이 있어서라고. 그러면서 프란츠 카프카, 마르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실러, 파트리크 쥐스킨트 등을 열거한다. (그러고 보면, 뭔가 강렬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작가의 이름은 왠지 평범하게 들린다는데, 베르베르, 플로베르, 보들레르, 에밀 졸라, 로맹 롤랑 같은 프랑스 이름은 듣기만 해도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음, 듣고 보니 또 그런 듯도 하다). 그가 겪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책방에 와서 ‘기욤 뮈쇼’라고 해서 그를 매우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뭔, 보도듣도 못한 작가라서…. 다시 물어보니, “귀여운 미소 책 있어요?”라는 문의였다고.
그가 책을 선택하는 두 번째 기준은 오프라인 서점 방문이라고 한다. 책을 들고 무작정 넘겨보다가, 너무, 아주, 엄청 같은 최상급 표현이 두 번 이상 나오면 사지 않는 확고한 철학을 견지한다나! 그는 “최상급 표현은 문장을 통해 독자가 알게 해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이 미리 써두면 읽는 처지에서는 맥이 풀린다”라고 말한다. (흠,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헌책방 주인장은 자신의 기준 두 가지를 설명하고 나서, 로베르트 무질의 책 제목이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 책을 샀다고 한다. ‘특성없는 남자’ 바로 그 자신과 같은 남자에 관한 긴 얘기를 담은 책을. 그는 엄청난 분량의 그 책이 자신이 최근 10년 사이 읽은 소설 중에 최고라고 주장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이번 주말, 아무 생각 없이 그 무모한 책에-무모하게 도전해보면 어떨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본다. 1000쪽이 넘는 대작이지만 미완성이라는데…. “무질”의 책을 “무모’하게 읽는 것은‘부질” 없는 일이 되려나. 작가(매사에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특징 없는 주인공을 그린)는 죽고 없고, 특징 없는 남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의자에 멀뚱히 앉아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특징 없는 남자를 찾다 지쳐 끝나버리는….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리려나.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