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신화의 땅 이집트 룩소르 이야기Ⅰ

여계봉 선임기자

 

아스완에서 출발한 나일강 크루즈선은 콤옴보와 에디푸의 신전을 들렀다가 나일강 크루즈의 종착지 룩소르에 여행자를 내려놓는다. 아스완에서 나일강 200km 뱃길을 달려온 것이다.

 

인구 45만의 이집트 4번째 도시 룩소르는 2 천년 간 이집트 역사의 중심지이자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야외박물관이다. 테베로 불려온 신왕조 시대 500년 도읍지로 우리나라 경주와 비유되는 이 도시를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백 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라고 칭송하였다. 룩소르 한가운데를 흐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전들이 있는 '산 자의 도시'(아크로폴리스), 서쪽은 왕들과 귀족의 무덤이 모여있는 '죽은 자의 도시'(네크로폴리스)다. 

 

-멤논의 거상

크루즈선에서 내려 서안에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로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거대한 석상 2개가 보이는데 바로 멤논의 거상이다. 17m 높이의 석상 중 하나는 거대한 바위를 통째로 조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개의 바위를 쌓아가며 만든 것이다. 이 조형물은 아멘호텝 3세의 석상인데 이 지역을 여행하던 그리스인들이 에디오피아 왕 멤논과 닮았다 하여 엉뚱하게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석상 뒤로 아멘호텝 3세의 장제전이 있었으나 나일강 범람이 잦은 평지에 세워져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지금은 거대한 석상만이 남아있다.

 

아멘호텝 3세 장제전의 제1 탑문인 '멤논의 거상'

 

-합세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 다음으로 등장하는 합세수트의 장제전은 3,400년 전 석회암 절벽 아래 배산임수 지형에 24m 높이의 3단으로 지은 건물이다. 투트모스 1세의 장녀인 합세수트 여왕은 원래 왕비였으나, 첩의 아들 투트무스 3세를 섭정하다가 자신이 스스로 왕에 오른 여성 파라오다. 자신이 건축한 독창적이고 웅장한 신전 외벽에는 파라오의 정당성을 부각하기 위해 암소로 묘사된 여신 하토르의 젖을 받아마시는 합세수트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집트의 영토를 크게 확장 시킨 이 여장부는 남성 파라오와 같이 턱밑에 뿌리 모양의 수염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전 벽에 새겨져 있는 합세수트 얼굴은 거의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합세수트에 의해 22년간 유폐되었던 투트무스 3세가 왕이 된 후 계모에게 복수하는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

 

장례식과 의식을 진행했던 3단의 합세수트 장제전

 

이 건축물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1997년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이곳으로 여행 온 일본인과 독일인 관광객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 이후 이집트의 모든 관광지에는 무장경찰이 배치되고 입장객들은 X레이 검색기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라미드 형상을 한 엘쿠른산 아래 '왕들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왕들의 계곡

'현세는 짧고 내세는 길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왕들의 계곡'이다. 주차장에서 바위산 계곡으로 코끼리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산 중턱과 아래에 파라오와 귀족들의 무덤 입구가 많이 보인다. 산꼭대기가 피라미드를 연상하게 하는 엘쿠른산 암벽 아래에는 이집트 신왕조 시대인 3,500년 전부터 500년 동안 조성된 800여 개의 왕과 귀족들의 암굴 무덤이 모여있는 왕들의 계곡이다. 

 

투탕카멘의 무덤 투시도

 

 

파라오의 무덤은 파라오의 즉위와 동시에 시작하는데, 300m 두께의 암석을 80m 정도로 뚫고 들어가 제일 안쪽에 관을 만들고 방을 만든다. 그리고 관이 있는 방에서부터 무덤 벽화를 새기는 작업을 시작하여 입구 쪽으로 나오는데, 파라오가 죽기 전까지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길수록 무덤이 더 볼 것이 많다고 한다.

 

깊은 계곡에 무덤을 꼭꼭 감추어 놓았지만 파라오들은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람세르 9세가 모든 무덤을 전수조사한 내용이 기록된 에봇 파피루스를 통해 당시 도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정작 람세르 9세 자신의 무덤도 도굴당한다.

 

람세스 9세의 무덤 석실

 

무덤 발견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지금도 계속 발굴작업 중이다.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와 황금마스크의 주인공 투탕카멘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파라오들의 무덤 거의가 도굴되었으나 9살에 즉위하고 18세에 사망한 투탕카멘 무덤만은 그대로 보존되어 그 안에서 부장품이 3,500점이나 발견되었다. 현재 무덤에는 투탕카멘의 미라만 남아있고 황금마스크와 황금 의자, 석관 등 주요 유물들은 카이로 고고학박물관 투탕카멘 전시실에 있다.

 

람세스 3세의 사산 왕자(태아) 미라

 

- 네페르타리 무덤

왕비의 계곡은 제19~20왕조 사이의 왕비와 왕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현재 일부만이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람세스 2세의 비(妃)인 '네페르타리의 무덤'이다. 물론 아부심벨에 있는 네페르타리 신전 역시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정교함이 미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무덤 또한 세계 최대의 고대 지하 갤러리라는 명성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이 무덤은 일반인에게 자주 공개하지 않는데 내부 보존을 위해 관람 시간도 10분으로 제한하고 있고 입장료도 선택 옵션 가격이 180유로로 이집트 관광 유적지 중에서 가장 비싸다. 

 

네페르타리가 하토르와 네프리스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

 

무덤 내부는 127평의 규모로 왕비의 계곡에서 가장 크다. 하토르 여신이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입에 넣어주는 모습, 오시리스신이 손을 벌려 네페르타리를 경배하는 모습, 신과 운명을 걸고 내기 체스를 두고 있는 네페르타리 등이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벽 속에서 네페르타리와 신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해서 수천 년 녹아든 전율이 쉽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무덤 내부는 당장 벽에서 네페르타리와 신들이 걸어서 나올 것만 같은 생생함으로 가득하다.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부인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부인의 무덤 속에서 느낄 수 있다. 

 

하토르 여신이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네페르타리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

 

람세스 2세의 유적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그의 비 네페르타리가 함께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녀는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마음을 이토록 붙들어 맬 수 있었을까? 이집트 3대 미녀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아케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 그리고 람세스 2세의 비 네페르타리. 그녀의 무덤을 보고 나면 '네페르타리 무덤을 도굴했더라도 람세스 2세의 사랑만은 도굴하지 못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 같다. 

 

한 마리의 황소(호루스신)와 일곱 마리의 젖소(하토르 여신) 

 

관람 시간이 경과 되었다고 무덤에서 나가라는 관리인 등쌀에도 5분을 악착같이 버티며 그녀와의 작별을 늦추어본다. 죽은 자의 무덤에서 나오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황량한 사막이다. 태양이 한낮의 위용을 떨치기 전에 서둘러 '산 자들의 땅'(아크로폴리스)으로 가는 펠루카를 타기 위해 나일강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yeogb@naver.com

 

작성 2023.02.08 10:43 수정 2023.02.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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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