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이봉수 [기자에게 문의하기] /
"1593년 2월 18일 맑음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여 웅천에 이르니, 적의 형세는 여전하다. 사도첨사를 복병장으로 임명하여 여도만호·녹도가장·좌우별도장·좌우돌격장·광양이선·흥양대장·방답이선 등을 거느리고 송도에 숨어서 복병하게 하고, 모든 배들로 하여금 유인케 하니, 과연 적선 십여 척이 뒤따라 나왔다.
경상도 복병선 다섯 척이 재빨리 나가 쫓을 때, 나머지 복병선들이 일제히 적선을 에워싸고 여러 무기를 쏘아대니, 죽은 왜적의 수는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서 다시는 나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서 사화랑으로 돌아왔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사화랑(沙火郞)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명동 삼포마을이다.사화랑은 이순신 장군이 웅포해전을 치를 때 자주 들렀던 곳으로 사화랑 봉수대가 있는 사화랑산 바로 아래 있는 포구다. 거제도 소진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를 모항으로 하여 1593년 2월 적의 소굴인 웅포를 공격할 때, 자주 들러 물을 공급받거나 하룻밤 정박하고 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