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 따라 떠나는 신화의 땅 이집트

불모의 사막에 핀 인류문명의 꽃, 아부심벨 신전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성스러운 ′나일의 별′ 시리우스가 유난히 밝게 빛나는 날 새벽 4시, 아스완 나일강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에서 내려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부심벨로 가는 수십 대의 버스들이 일렬로 서서 경찰의 점검을 받은 후 일제히 아부심벨을 향해 출발한다. 새벽부터 차량 수십 대가 길게 늘어서서 라이트를 밝히며 사하라 사막의 새벽 공기를 뚫고 달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지금은 풀렸지만 아부심벨 관광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되고 있었다. 룩소르 핫셉수트 장제전에서 수십 명의 관광객이 테러집단에 의해서 희생된 사건 이후 아스완-아부심벨 구간의 관광객이 탄 차량들은 한데 모여서 앞뒤로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만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하라 사막은 누런 황토 빛 바탕에 검게 탄 듯한 봉우리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 마치 우리가 혹성을 질주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2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자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았던 새벽녘의 안개가 연기처럼 흩어진다. 이어서 사막의 지평선을 가르면서 붉게 물든 동녘 하늘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장대한 일출은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부심벨 가는 길은 황량한 혹성을 연상하게 한다. 

 

 

걸리적거릴 것 없는 사막에서는 태양은 단 한 번의 기지개로 완전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부심벨로 가는 도로변은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계의 행성 같은 분위기다. 길가에 도로 공사 차량과 장비들만 없다면 이곳에서는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아부심벨이 가까워지니 나세르 호수로 이어지는 하천들이 나타나고 푸른 잔디 축구장처럼 보이는 밀, 채소 농장에서는 대형 스프링쿨러가 시원스럽게 물을 내뿜고 있다. 영화 '미션'에서 화성에 조난 당한 식물학자 마크 와트아가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재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에 푸른 들판이 있다.

 

 

인구 3천 명의 아부심벨에 들어서니 초소와 망루에 무장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어 긴장감이 흐른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 280km 떨어진 이집트 최남단에 있는 수단과의 국경 지대 마을이다. 이곳의 지명은 1813년 유럽의 탐험가를 여기로 안내했던 이집트인 소년의 이름, 아부 심벨에서 따왔다고 한다. 변방의 작은 사막 마을은 이집트 최고 파라오 부부의 신전 때문에 이집트 내에서 손꼽히는 관광 명소일 뿐 아니라 아스완댐이 가로막아 생긴 나세르호수의 남단에 있어 수자원이 풍부하니 들과 강에서 얻는 자연의 선물도 풍요로운 곳이다.

 

아부심벨 대신전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먼저 마주한 것은 아스완 하이댐 완공으로 사막에 바다처럼 펼쳐진 푸른 담수호 나세르 호수다.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을 인위적인 호수로 변화시키는데 도전한 나세르의 대역사(大役事)는 5,000년간 이어져 오던 문명의 풍토와 역사를 바꿔놓고 있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아스완댐 준공으로 나일강 협곡에 생긴 거대한 나세르 호수

 

이집트 왕국 3,000년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를 이끌었던 고대 이집트 19왕조의 3대 파라오 람세스 2세는 태양신 아몬 라, 창조신 프타 그리고 자신과 부인을 위해 거대한 신전을 이곳에 세운다. 아부심벨 언덕 위에는 람세스 2세 신전으로 불리는 아부심벨 대신전과 그가 가장 사랑한 부인 네페르타리와 하토르 여신을 위해 만든 소신전이 나란히 나일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1959년 이집트 정부가 아스완댐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장려한 건물이자 이집트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아부심벨 대신전도 나일강가에 있는 무수한 신전과 함께 수몰(水沒)될 운명에 처하게된다. 그러나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 세계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인류사회는 막대한 돈을 들여 신전을 1,300여개 조각으로 나누어 1967년 9월 원래의 위치보다 뒤로 210m, 위로 63m 통째로 옮겨 놓는데 성공한다. 이전 기금을 부담한 50개국 중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는데, 당시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못했지만 크리스마스 실(seal) 판매 수익금으로 이집트를 도왔다고 한다.

 

대신전 입구에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이 4개나 서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2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 4개의 람세스 2세 거상이 있다. 20대에 왕위를 물려받았고, 그 후 60년 이상 이집트를 통치하다가 대충 90살에 죽었다. 그 세월만큼이나 이집트를 황금기로 이끈 이 사나이는 이집트 자체를 상징하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람세스 상 4개 중 1개는 파괴되어 상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져 있는데 그 크기가 4m나 된다. 석상 앞에 서서 람세스 2세에게 묻는다. 

 

"모세가 거친 황야를 헤치며 유대인을 이끌고 출애급 할 때 홍해까지 뒤쫓아간 파라오 바로는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이었나요?" 

 

람세스는 묵묵부답이다.

 

땅에 떨어진 람세스의 머리. 두 다리 사이에 그의 딸이 미소 짓고 서 있다. 

 

 

신전의 크기는 높이 32m, 너비 38m, 깊이 63m이며, 신전 내부에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람세스 2세의 8개의 입상(立像)이 서 있다. 벽화에는 기원전 1275년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벌어진 히타이트와의 대규모 전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시리스의 형상을 하고 있는 8개의 람세스 입상

 

람세스 2세가 있는 신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카데쉬 전투 장면

 

신전 건축에 동원된 이 지역에 사는 누비아인들은 1년 중 햇빛이 춘분, 추분 2회에만 신전 입구와 좁은 복도를 지나 지성소 깊숙이 들어와서 람세스 석상을 비추도록 설계했다 하니 누비아인들의 천체 과학 지식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람세스 2세의 석상을 모신 신전의 지성소

 

 

바로 이웃에 있는 아부심벨 소신전은 사랑과 행복의 여신 하토르와 네페르타리 왕비를 위한 신전이다. 높이 12m, 너비 26m, 깊이 20m로 람세스의 신전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소박하지만 예술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전 앞에는 6개의 석상이 있는데 람세르가 부인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파라오인 자신과 같은 크기로 석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소신전 앞에 있는 6개의 석상은 왕과 왕비, 하토르 여신상이다

 

 

신전 내부에는 네페르타리 무덤처럼 암소 7마리와 숫소 1마리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왕비의 팔에는 호루스신이 그녀를 보호해준다는 의미로 호루스 문신이 새겨져 있다. 신전 내부에는 표정이 부드러운 하토르 여신상들이 가득하다. 네페르타리는 남편을 잘 만난 덕분으로 죽어서도 이집트 최고의 부부신 호루스와 하토르의 보호를 받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네페르타리가 하토르 여신에게 공양을 바치는 모습 

 

두 신전의 석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을 위해 잘랐다 붙인 자국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조각조각 잘린 자국이 온몸에 가득한 람세스 2세의 표정에는 자신의 육신을 떼어내고 다시 붙인 방자한 후세를 향해 불편한 심기가 담겨있는 듯하다.

 

소신전 입구에 서 있는 네페르타리

 

 

아부심벨을 뒤로하고 아스완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여정이 시작되는 바람에 피로가 겹쳐 자다깨다를 반복한다. 잠시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사막 끝에 바다가 보이고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물 위에 섬들이 떠 있다. 옆에서 가이드가 저것이 바로 '신기루(Mirage)'라고 한다. 공기의 기온 차이가 크고 불안정한 사막의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하면서 실제의 위치가 아닌 엉뚱한 곳에 상이 맺히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아부심벨에서 아스완 가는 길에 만난 사막의 신기루

 

사막의 끝, 누비안의 땅에 핀 인류 문명의 찬란한 금자탑 아부심벨은 결코 사막의 신기루가 아니었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2.14 16:29 수정 2023.02.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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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