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봉화 초암사



봉화 초암사


 

나는 고독을 편애했다. 종로 낙원동을 지나 인사동 길을 걷거나 견지동 조계사 앞마당을 걸을 때도 온몸에 고독을 치렁치렁 달고 다녔다. 고독은 순해빠진 애인처럼 투정 한 번 없이 나의 서늘하고 지독한 삶을 따라 다녔다. 나는 내 삶의 절박한 오류들을 외면하면서 고독과 함께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었다. 저녁마다 죽고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는 고독의 시체로 완벽한 사유의 집을 지으려는 계획은 오십이 넘고 삼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를 따라다닌 고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자꾸 들여다보니 고독은 어디가고 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내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고독이었다. 나는 이 난데없음에 허망했다. 나의 이 절벽 같은 허망 앞에서 종교의 말들은 미라처럼 말라갔고 삶은 새로워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백산 깊은 산골에 있는 나의 피안 자인헌으로 달려가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가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연민했다. 그랬다. 그 무엇의 가없는 결핍을 안고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나에게서 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서 허약한 나의 생애를 끌어안고 세상의 안쪽을 돌며 불완전한 나와 나 사이의 간극을 넘고 있었다.

 

마흔 중반으로 치달을 즈음 나는 일상의 진부함을 견디지 못해 골 깊은 산들을 헤매고 다녔다. 헐겁고 나약한 삶을 추스를 촌부의 그을린 얼굴 같은 토담집을 찾아 태백산맥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와 붙는 토담집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소백산 골짝에서 깊은 잠에 빠진 산신령 같은 토담집을 만났다. 그건 행운이었다. 산속 외길이 끝나는 곳 오백고지 위에 앉아 있는 토담집은 백오십 여년의 시간 속에 산사처럼 풍경이 되어 있었다. 자연의 영역 안에서 인간의 삶이 비릿하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나는 토담집을 자인헌이라 이름하고 틈나는 시간마다 달려갔다. 자인헌에서 나는 다시 정맥이 푸르러지고 삶에 찰진 윤기가 돌았다. 어린아이처럼 분별없는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자연에게 깝죽대며 속수무책 자유했다. 소백의 연봉들을 사모하며 나는 자인헌에서 여러 해 봄을 맞고 봄을 보냈다. 나의 디스토피아를 숨겨준 소백의 숲에서 게으르고 나태하고 허약한 낭만이 오래 지속되기를 주술했다. 소백산 자인헌에서 인생은 감질났고 삶은 달맞이꽃처럼 피어났다. 그래서 나는 미안했다.

 

나는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고 그리움의 언덕을 오르지 않았다. 일주일 중 닷새는 서울에 궁둥이를 붙여야 먹고 사니 어쩔 수 없이 소백과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길에서 방황했다. 종로 사무실에선 빈둥대는 날들의 쓸쓸함이 나를 소백으로 등을 떠밀고 나는 책의 본적지를 묻는 일도 시들해지는 날에는 앎에 대한 책임도 없이 출판을 미루고 바람처럼 소백을 떠돌았다. 소백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쓸데없는 인생에 대해 물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달맞이꽃처럼 소백은 내게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심심한 동물들이 몰려와 벗해주면 나는 마치 부처의 마음을 아는 냥 번민이나 고뇌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주제를 넘곤 했다. 그런 소백의 즐거움에 빠져 시간은 더디 갔고 나의 분별은 더디 가는 시간보다 빠르게 자라났다. 나는 수시로 시간의 무지와 싸우다가 시간에게 점령당하곤 했다. 그랬다. 그럴 뿐이었다. 소백에서 시간은 유토피아처럼 흐르고 나는 시간의 강을 건너며 무의식 저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이 보였다. 산속에 들어앉은 숲도 보였다. 무르익어 경전이 된 풍경이 보이고 풍경 속에서 빛나는 산사가 보였다. 산사는 의연한데 나는 몽매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에게 미안해서 종교 밖에서 빛나는 순명한 인간의 마음을 찾아 소백을 걸어 나오며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

 

 

이천십삼년 여름은 봉화에서 날카로웠다. 태양의 바늘이 내리꽂히는 순흥면 들판을 지나자 죽계로 모여든 물들이 호수를 이룬 마을이 나타났다. 호수는 넓고 컸다. 더위를 피해 사람들은 호수로 몰려들고 늙은 촌부들은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표정 없이 그저 일하기 바빴다. 이 아름답고 고요한 호수가 소백에 있으니 소백은 전염병도, 전란도, 흉년도 없는 십승지라고 택리지에서 예찬했다. 격암유록을 쓴 남사고도 소백산을 지나가다가 말에서 내려 넙죽 절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살아있는 산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순흥은 피의 고장이기도 하다. 단종복위 운동에 참여한 순흥안씨들이 세조에게 피의 보복을 당해 이 죽계구곡이 피로 물들었다고 하니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호수를 지나서 죽계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자 길은 습기에 젖어 있고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큼 좁았다. 앞에서 차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안고 소백산 안쪽 깊숙이 들어앉은 초암사 초입에 들어서서야 여름태양은 조금씩 열기를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부처를 만나러 왔는지 아수라를 만나러 왔는지 미망 속을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 다시 보니 가지런한 돌계단에 앉은 잠자리가 명상에 들어 있었다. 나는 잠깐 화엄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화엄이라는 생각이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오는 순간 잠자리는 사라지고 화엄이라는 언어만 계단에 나뒹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더위 탓이다. 아니다. 속된 마음 탓이다. 속된 마음속을 뒤집어 털어내려고 끙끙거렸지만 끈적끈적한 더위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다. 본시 속된 마음이란 인간적 삶의 기초가 아니던가. 속된 마음을 내려놓고자 온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속됨을 사랑하기 위해 왔다. 속됨은 나의 목구멍으로 밥을 밀어 넣어 준다. 내장이 녹슬지 않도록 기름기도 쳐주고 인류의 영원을 이어줄 자손번식도 도와준다. 속됨은 속돼야 빛난다. 그래서 속됨은 위대한 인간의 어머니다. 속되다는 생각을 접으니 비로소 내가 보였다. 계단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화엄이라는 언어도 슬그머니 대적광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목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대적광전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내가 비웃으며 말했다.

 

-, 혹시 안티부처?

 

 


살얼음 같은 대적광전의 경건과 마주한다는 것은 새벽 남대문시장에 흐르는 삶의 뜨거움과 같다고 생각하는 동안 살이 베일 것 같은 경건함이 나의 온 몸을 죄어왔다. 주불이신 비로자나불은 여전히 말이 없으시고 나는 오금이 저려 겨우 삼배를 마치고 일어서 합장을 했다. 조심조심 뒷걸음을 해서 좌복에 올려놓은 가방을 들으려는 순간 가방 손잡이에 이상한 물체가 앉아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불경스럽게 소리를 지를 수 없어 무서움도 꾹 참고 자세히 보니 박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가방을 조심스럽게 들고 대적광전 밖으로 나와 나무위에 박쥐를 얹어 놓고 들여다보았다. 박쥐는 퉁퉁 감은 검은 빛의 날개를 펴고 빨간 입을 쩍 벌리고는 주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달려와 신기하다며 박쥐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태양은 여전히 빛났고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은 경건했는데 박쥐와 나와 사람들은 유심에 휘말리며 소란했다. 유심한 나는 분별 속에서 허둥댔다. 나는 아직도 분별을 사랑하는 중생이었다. 저 작은 생명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초암사의 오랜 신도였을 것 같은 한 무리의 보살님들이 다가와 저마다 한마디씩 쏟아 놓으며 대적광전으로 들어갔다.

 

-박쥐는 악귀를 물리치는 천둥번개의 정령이지요.

 

 


초암사에서 박쥐는 하필 내 분별 속으로 들어와 부처와 나 사이를 시험했다. 모자란 불심을 눈치 챈 박쥐의 무정설법에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하며 대적광전을 나오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의 불심은 비루했고 화엄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는 추상이었다. 나는 추상의 등에 업혀 신라의 향기가 서린 초암사삼층석탑 앞에 섰다. 시간을 이고 앉아 부처가 되었다가 예수가 되었다가 우주가 되었다가 무심한 언어의 행간에 놀아난 온갖 수사를 갖다 붙여도 초암사삼층석탑과 마주할 때의 짜릿한 전율은 무심이었다. 그런데 무심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른다. 이 세상이 공인지 내가 공인지 저 초암사삼층석탑이 공인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어렵고 애매하고 정갈한 불교는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아직도 한 발짝 떼는 것이 저 도량을 건너는 것 보다 힘들다. 그러나 나는 중생인 것이 다행이다. 중생이어서 위안이다. 샘물 앞, 부처님의 빡빡머리 위에 앉아 졸고 있는 잠자리도 나처럼 무지몽매해서 다행인지 모른다. 나의 아집을 버리러 떠난 초암사에선 여름이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3.25 10:13 수정 2019.03.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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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