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이순영

술값이 오르니 술이 더 당긴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는 술집 벽에 붙은 시를 보며 재밌고 신나서 배꼽이 달아나도록 웃었지만, 뒤끝은 코가 찡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 몇 년간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비대면의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침묵하거나 술 먹거나 둘 중 하나였다. 술은 행복한 사람에게는 달콤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쓰디쓸 뿐이다. 그래도 술이라도 있는 세상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이다. 술마저 없었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요즘 문화의 아이콘인 유튜브 방송은 음식과 술이 단골 메뉴다. 술을 마시며 돈도 버는 세상이 된 것이다. 주류시장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술이 탄생하고 주식시장에서는 주류주식이 호재가 된다. 유명인들은 술로 인해 저지른 실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흉악범들의 변명은 이제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조폭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주폭이란 말은 금시초문인데 요즘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주폭이라고 하며 정부에서는 주폭을 단속한다고 한다. 그뿐인가. 술은 의사들을 먹여 살린다. 많은 병이 지나친 술로 인해 생겨 병원 문턱이 닳아지도록 드나든다. 술은 오만가지 이야기를 낳고 오만가지 사건을 만드는 주범임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술은 독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술은 약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술 없이 못 산다. 오죽하면 친구 중에 술친구가 있겠는가. 맨정신으로 사는 세상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술기운에 기대 그 힘듦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고 싶어서 술과 벗하는지 모른다. 반가운 모임엔 술이 빠지면 섭섭하고 결혼식 같은 좋은 자리에도 술은 기분 좋게 만드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인이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 대부분이 술이다. 술 마시는 시간을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비난하지만 술 마시는 동안 마음은 휴식을 취하고 있기에 재정비 재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술은 낭만의 친구고 외로움의 친구다. 인생 뭐 있겠는가. 술이라는 친구 하나 둬도 나쁠 것 없을 것이다. 

 

술은 특히 문인들이 매우 사랑한 벗이다. 문학작품 중에 유독 술이 많이 등장한다. 골방에 앉아 원고지와 씨름하다 보면 술 생각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종로 바닥을 제집 드나들다시피 하며 술친구들과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던 이상, 박인환, 서정주, 천상병 등 수 많은 문인들의 전성시대는 술의 전성시대였다. 지금도 인사동 어느 모퉁이 술집에서 문학을 논하고 철학을 논하며 낭만을 논하는 그들의 세상엔 술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파격적인 이름의 티비 드라마는 대히트를 쳤다. 젊은 여성들의 주사는 귀엽고 사랑스러워 사람들은 열광했다. 술이 문화를 만들고 콘텐츠를 만드는 세상이다. 

 

시선이라 불렸던 당나라 시인 이백도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이백은 지금도 술과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그의 명성 뒤에는 반드시 술이 딸려 나온다. 이백이 지은 시가 1,500여 수가 되는데 그중에서 170여 수가 술에 관한 시라고 한다. 참 지독히도 술을 좋아했거나 술에 빠져 살았거나 술을 핑계로 현실에서 도망갔는지 모른다. 이백의 시에는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냥 취기에 쓴 것이 아니라 술과 시를 진정으로 결합하여 슬픔이든 기쁨이든 격정적으로 녹아내 시를 지었다. 이백은 감정 표출에 망설임이 없었고 진취적이며 자유분방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표현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힘이 있다. 이백은 삶이 시이고 시가 삶인 내적 융합을 이룬 시인이다. 그 융합의 매개체가 바로 술이다.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라는 시를 보면 홀로 쓸쓸하게 술을 마시지만, 전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꽃도 친구요 달도 친구요 그림자도 친구요 술도 친구이니 그보다 더 좋은 벗이 어디 있겠는가.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같이할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맞이하니

비친 그림자에 셋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나만 따라다닐 뿐.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봄날을 마음껏 즐겨보노라.

내가 노래를 부르면 달은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어지럽구나.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한 뒤에는 각기 흩어지리니,

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귐 길이 맺어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위공무원이었던 이백은 정치적 야심도 있었겠지만, 궁궐에서 왕을 칭송하는 시를 써야만 잘리지 않고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무원의 철밥통을 지켜야 하는 어용시인의 고통을 스스로 자책하며 술에게 의지하고 시에게 기대 현실을 뛰어넘어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다. 어용시인의 철밥통은 오래가지 못하고 현종의 총애를 받던 환관의 미움을 사 궁궐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백은 쫓겨나서야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자유의 몸으로 전국 각지를 떠돌며 마음대로 술도 마시고 시도 쓰면서 신선의 세상으로 다가가는 술로 신선이 된 ‘시선’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고 마스크도 벗어 버리는 시절이 왔다. 꽁꽁 싸매고 살아야 했던 시간들은 털어 버리고 아련한 달이 뜨는 봄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이백 한잔 나 한잔 달님 한잔 또 나 한잔하면서 봄밤의 꿈을 꾸어보자. 인생 뭐 있겠는가. 술 마시며 이백도 불러내고 두보도 불러내고 천상병도 불러내 한바탕 질펀하게 마셔 보는 거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꽃을 피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하면서….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02.16 11:26 수정 2023.02.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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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