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말들이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에서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무슨 사고가 났다고 하면 참사라는 말이 아침뉴스를 가득 채우고, 상대가 있는 말에는 으레 압도적이라는 말이 붙어서 상대방의 기를 죽이려 한다. 중요한 것은 자극적인 말잔치가 아니라 어떤 일로 인한 개인의 상처와 사회적 갈등의 빠른 치유이다. 또 치유 기간도 개인에 따라 다른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젊음들이 사라져간 아픔과 아쉬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만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어떤 일이 생겨나면 그것들을 예방하고 방지하느라고 남몰래 흘린 땀은 간과되고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불안에 떨었다’고 사족을 단다.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당연히 참사다. 태풍 뒤에 나무가 쓰러진 것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치유되는데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야 오죽 하겠는가.
말이란 그 사람의 마음의 울림이라고도 한다.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시를 읽고, 꽃구경을 가는 것도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부드러운 여백을 확인하고 주변을 따뜻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시를 읽고 고운 말을 쓰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짧은 글로도 충분히 마음이 움직이고 키 작은 야생화 한 송이로도 마음의 평온을 얻으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로도 행복을 누린다.
사람들의 말에는 그 시대의 삶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동양고전인 시경(詩經)의 내용이 당시에 불러졌던 백성들의 노래를 채집하여 정리한 것이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들에 가시가 있고 모가 나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아픈 사람에게 어설픈 위로보다 차라리 같이 울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말이나 글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고 하니, 좀 더 따뜻하고 곱게 변할 수는 없을까, 꼭 지도자라는 이들이 나를 따르라 하지 않더라도, 시인이며 작가들이 예쁜 시어(詩語)나 아름다운 문구를 토해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고운 말들이 오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來言美)’는 것이나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으니.
예전의 노랫말들을 음미해 보면 그야말로 시(詩)다. 전후(戰後)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도 곳곳에 정(情)이 자리하여 우리 사회를 따스하게 했다. 노숙인들이 영하의 날씨에 쫓겨나지도 않았다. 물질적 풍요에 빠진 작금에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자살률(自殺率)은 또 무엇인가. 외로운 사람이 죽음을 생각할 때 단 한 사람만 얘기를 들어주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주위에 부부 갈등을 겪는 이가 ‘언니야 얘기 좀 하자’는 전화에 “지금은 좀 바쁘니 나중 전화할게”라고 말하고 끊었는데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는 후회의 탄식이 평생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왜 꼭 압도적이어야 하는가.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의 대사가 나온 이후로 곳곳에서 압도적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렇게 우리의 사회적 갈등도 압도적을 향해 치명적으로 치닫는다.
‘압도적’이라는 것은 빈자(庶民)들에게 압도적 허탈감만 더할 뿐이다. 혼자 잘 산다고, 끼리끼리만 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자 동네 하나가 무인도에 이주해 갔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그곳에 행복만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조금 작다고 하여 위축되거나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더욱 없다. 잘 살펴보면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진 것도 제법 많다. 무엇이든지 생각의 문제이다.
다시 ‘고운 말’을 생각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지리산 천왕봉 일출(日出)을 볼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황혼에 별거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히 우스갯소리라고 들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개운치 않다. 이것은 물질적 환경이 완전히 다른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차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급하게 변해가고 있는 세상 물정도 모른 채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만의 생각인가?
곧 봄이다. 여기저기에서 희망이 피어올라오는 꽃봄이다. 우리는 또 봄꽃 선물을 받을 것이다. 우리 이제부터라도 말을 좀 더 곱게 하자. ‘고운 말’이라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나의 격(格)도 올려 준다. 여러 말들 앞에 ‘고운’을 붙여보자. 고운님, 고운 마음, 고운 손길. 그 말들을 사용하다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우리의 가슴도 좀 더 편안해질 것이다. 혹시 아는가? 나의 고운 말에 어떤 고운님이 메아리로 다가올지~.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벌써부터 봄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동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