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소포를 부치기 위해 어느 우체국을 찾았다. 주소를 적는 난에 한자로 썼더니 우체국 여직원이 말하기를 ‘중국으로 가는 우편물이냐’고 물었다. 한자로 표기되지 않는 가게 이름은 한글로 써 놓았는데 중국으로 보내는 편지냐고 말하면 어찌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나를 쏘아보면서 ‘우리는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잘 몰라요. 공무원 시험에는 한자 과목이 없고 영어 과목이 있기에 영어 공부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해서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직원이 자신 있다는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시켜보고 싶었지만 나의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직원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우스운 일이라 그만뒀다. 내가 한자를 쓰는 이유는 평소에 익혀 둔 한자를 잊지 않기 위해 지인들께 책을 보낼 때 간혹 한자를 쓰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컴퓨터의 자판이나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느끼는 편리함은 그 어느 나라의 문자를 앞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은 한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약 70% 정도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어 한자를 더욱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요즈음 일부 관심 있는 부모들의 권유에 의해 한자를 배우는 소수의 학생들을 빼고는 우리나라의 한자 교육은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까운 일본은 그들의 문자가 한자의 부수에서 따 온 것이라는 특징이 있기도 하지만 한자 교육이 생활화 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자 교육의 방침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60여 년 전에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부터 한자를 썼고 괄호 안에 한글을 혹은 한글을 먼저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넣는 방식으로 여러 번 변경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한글전용이라는 이름으로 교육방침이 바뀌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한문이라는 과목이 신설되었다가 사라지는 등 한자 교육의 정체성이 없어졌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보나 지리적인 여건으로 보아 미우나 고우나 일본이나 중국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자연적으로 교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언어도 익혀야 한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 한자를 모르고 접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려서부터 한자를 익혀 놓지 않고 있다가 앞의 두 나라의 언어를 성인이 되어 접하면 당황하게 될 것이고 많은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데 있어 크나큰 교육 손실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는 한자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단한 학자가 아니면 잘 몰랐던 글자이다. 더욱이 한글은 언문諺文이라 하여 천시하고 한자를 써야 만이 지식층으로 대접받는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경우를 잘 된 일이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보면 한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 다시 말해 한자는 세련되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들만 쓰는 글자로 취급되는 것 같기에 그러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불어 닥친 영어교육의 열풍 때문이다. 물론 세계화로 가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언어 가운데 하나가 영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유아기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영어를 10여 년이 지나도 영어권 외국인 앞에서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반면 한자는 3년 정도 집중하면 생활에 필요하고 뜻을 이해 할 수 있는 글자를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한글은 그 어느 나라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특별하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면 뜻이 통하지 않는 단어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영어 시간을 조금 줄여서라도 한자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