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쯤 되면 난 졌다.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임을 향한 오매불망, 지극정성이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 왜 그토록 사모하다 못해 스토킹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나무라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솔직한 느낌이다. 남편을 잃은 여인처럼 그 정이 애틋하다 못해 절절하다. 그의 정신세계가 무섭기까지 하다. 요즘은 관심이 지나치면 관종이요, 그 관종을 넘어 집착하면 스토킹이라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세상이다. 그런데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지고 누릴 만큼 누린 금수저 출신의 송강이 쓴 ‘사미인곡’을 읽다 보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이 몸이 태어날 때 임을 따라서 태어나니’ 하는 구절을 보면 박정희 시대의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 ‘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국민교육헌장 첫머리에 그렇게 적어 있었다. 나는 역사적 사명이 뭔지도 모르고 태어났다. 누가 나의 탄생에 역사적 사명을 부여했단 말인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목적을 두고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정철은 선조가 태어날 때 따라서 태어났다고 아부한다. 그렇다. 아부도 능력이다. 무능하고 비겁한 선조라는 조선 최악의 왕을 따라 태어났다니 그보다 더한 아부가 어딨겠는가. 아니다. 정말 정철은 그리 생각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의 정신적 기둥인 주자학이라는 거시적인 틀 안에서 봐도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주자학의 주자가 주장하는 건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 하면 과감하게 갈아치워야 한다는 게 주자의 생각 아니던가.
요즘도 국회의원들은 공천받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가며 아부하고 공무원들은 진급에 눈이 멀어 온갖 악수를 두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 옛날에는 오죽했으랴. 고관대작이라도 왕이라는 절대권자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충성하다 못해 사랑하는 노래를 지어 온 나라에 알리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네가 그 시대의 상황을 모르니까 그래’라고 나무랄 수도 있다. 교과서에서 달달 외우고 공부한 시간이 얼마인데 왜 모르겠는가. 그래도 정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일 년 후에 죽은 건 다행 중의 다행이다. 그 지리멸렬한 전쟁의 상흔을 보지 않았으니 그게 복이라면 복이다.
전라남도 담양에 ‘송강’이라는 강이 있는데 어릴 적에 그 이름을 따서 송강이라도 불렀다. 송강 정철은 정치적으로 탄압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송강에 내려와 글을 짓고 마음을 달래곤 했다. 권력을 향한 집념을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풀어낸 곳이 송강이다. 사미인곡은 그런 정철의 정치적 의지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대개의 장부 같았으면 ‘아 더러운 세상 잘 먹고 잘살아라’하며 퉤퉤 침을 뱉었을 것을 정철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복권되고 파직되고 하는 부침을 당하면서도 권력을 향한 애증은 끝내 내려놓지 못했다. 그 덕분에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는 정철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서 태어나니
한평생을 살아갈 인연이며, 이것을 하늘이 모르겠는가.
나 오직 젊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구나.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가
엊그제는 임을 모시고 궁전에 올라 있었는데
그동안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와 있는가.
내려올 때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삼 년이라.
연지와 분이 있지만 누굴 위해 곱게 단장하겠는가.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구나.
인생은 유한한데 근심은 끝이 없다.
무심한 세월의 순환이 물 흐르듯 빨리 지나가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갔다가는 다시 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알려진 정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퇴계와 기대승이 벌인 ‘사상로맨스’의 주인공 기대승의 제자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격인 ‘성균관’의 총장 퇴계에게 학생이었던 기대승이 편지를 보내면서 촉발된 그 유명한 사건이 사상로맨스다. 기대승의 집요함과 학문에 대한 애증을 닮은 것이 제자인 게 맞는 것 같다. 정철의 문학은 지금도 교과서를 장악하고 학생들의 시험을 주관하고 있으니 특별함이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왕을 그리워하는 작품을 썼을지언정 문학적 가치는 별개의 문제다. 문학으로 길이 남는 작품이 된 것은 정철의 문학적 소양의 결과인 것이다. 거지 같은 부모도 부모요. 무능하고 비겁한 왕도 왕이다. 인간애의 승리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반정을 꾀한 정여립 사건이 터지자 선조가 완장을 채워주니 정철의 칼은 망나니 춤을 췄다. 그 춤이 어찌나 섬뜩하고 무서운지 율곡이 화평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사미인곡에서처럼 ‘인생은 유한한데 근심은 끝이 없다’는 걸 정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맛 들인 권력은 그 달콤함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토록 아름다운 한국문학을 드높인 정철이라 해도 정치적으로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조선이라는 촛불 앞의 불안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애썼던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보다도 정철의 문학은 백성들의 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데 이바지했다. 정철의 ‘사미인곡’이 우리나라 최고의 국문 시가로 평가받는 이유다. 우리도 누군가를 향한 이런 지독한 사랑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평생을 살아갈 인연이며,
이것을 하늘이 모르겠는가.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