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사랑과 전쟁

고석근

그대는 계속해서 그대 자신을 육성할 뿐 아니라 위로 뻗어 오르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결혼이라는 정원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기를!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부부 공부모임이 있었다. 다른 공부모임에서 부부 공부모임에 대해 얘기를 하면 회원들이 “아직 부부 공부모임 하세요?”하고 질문을 한다. 부부가 함께 공부를 하면 대개 부부의 갈등이 표출되며 몇 년 가지 못하고 깨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부부 공부모임은 벌써 7년째 접어들고 있다.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지만, 서로의 이해를 높여가는 기회가 되고 있는 듯하다. 어제 부부 공부모임에서는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주제였다. 10대의 소년 마이클과 30대 여성 한나의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

 

한나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 감시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한나는 마이클을 만날 때마다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문맹인 한나는 책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 하지만 한나는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랑은 미래가 없다고. 그래서 마이클을 꼬마라고 부른다. 마이클은 이 말을 거부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한나에게 ‘성숙한 남자’가 되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이것을 아는 한나는 마이클을 떠난다. 그녀가 전범 재판을 받으면서 법학과 대학생이었던 마이클이 참관하게 된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이클에게 문맹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에 처한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한나는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되지만 마이클의 도움을 거부하고 자살하게 된다. 그녀는 마이클과의 순수한 사랑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한나가 면회 온 마이클의 손을 잡자 그는 슬며시 손을 빼낸다.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런 말은 분명히 봉건적이다. 가부장적이다. 하지만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에 형성된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사고가, 우리의 무의식에 마음의 원형이 되어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이러한 남녀 사랑의 원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소재가 되었던 ‘항우와 우희의 슬픈 사랑 이야기’일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천하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난세 속에서 두 걸출한 영웅이 등장한다.

 

항우와 유방, 항우는 유방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지만, 끝내 유방에게 지고 만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항우는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술잔을 나눈다. 항우가 노래를 부른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으나

시운이 불리하여 추도 나아가려 하지 않는구나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우희는 ‘대왕의 의기가 다하였다면/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요’하고 화답을 하고는 자살했다고 한다. 그 후 항우도 오강에서 자살하고 만다. 천하의 영웅 항우는 사랑하는 우희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희는 사랑하는 항우를 위해 자살하는 것이다. 이 경극이 계속 공연되고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것은, 이 사랑 이야기에 남녀 마음의 원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밖에 모르는 남자와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 이 둘의 차이와 반복이 사랑과 전쟁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낼 것이다. 여자는 사랑을 모르는 남자에게 격분한다. 남자는 자신의 자존심을 긁는 여자에게 격분한다.

 

그런데 결혼한 부부들은 알아야 한다.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오로지 자신의 정신적 성숙을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한다. 남녀는 둘이 만나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남녀는 각자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긴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인 자기실현의 여정에서 ‘결혼이라는 정원’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긴 여정을 위해 우리는 서로의 깊은 내면에 가부장적인 시대의 남녀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밖에 모르는 남자와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가 서로 세상과 사랑을 가르쳐주고 배우며, 각자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며 커다란 하나가 되어가야 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3.02 10:27 수정 2023.03.02 10:2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