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은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가공할 바이러스로 등장해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의 위세도 수그러들고 있습니다. 햇볕도 증가하며 춥고 음습했던 겨울 날씨도 봄의 따스한 기운에 자리를 내줍니다. 자연 만물이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은 커가고 있습니다. 장차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막연한 불안과 우려가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특히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분들의 불안이 현실화할 것 같습니다. 요즘 들리는 얘기로는 AI가 이미지를 합성해 놀라운 그림을 그려내고, 7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낸다는군요.
2018년 10월 뉴욕의 미술품 경매에서는 인공지능(AI)이 그린 초상화가 43만2000달러(약 6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였던 데이비드 홀츠가 개발한 AI 화가‘미드저니’는 2022년 7월 온라인 메신저 프로그램 ‘디스코드’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객이 채팅창에 명령어와 함께 원하는 그림 키워드를 입력하면 30초 만에 그림 4개를 그려주는데,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구도가 비슷한 그림을 더 만들거나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술인들이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하소연을 할 때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세기의 시선을 끌었던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을 기억할 겁니다. 복잡한 여러 수를 상정하는 바둑대결을 앞두고 당시 사람들은 인간을 압도할 정도까지 인공지능이 발전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국에서 보듯 바둑천재 이세돌 기사가 힘겹게 한판 승리를 얻음으로써 완패를 면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AI의 진화는 생각보다 빨랐던 거죠. 시간이 흐른 오늘날 AI는 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챗GTP는 뛰어난 논술실력과 에세이 작성 능력을 갖췄다고 합니다. 과거의 분석형 AI로부터 요즘의 생성형 AI로의 변화가 일구어낸 성과라고 하는데, 이런 AI가 작성한 에세이가 리포트 제출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고, 또 법학대학원 문제에서 웬만한 수험자가 낸 답안보다 더 뛰어난 답안을 작성했다고 하니, 이제 인간은 고유의 영역을 점점 더 내어주면서 초라해지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습니다. 상대적으로 기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감성, 상상력, 창의력에서도 이같이 생성형 AI의 왕성한 활동이 증가하다 보면 정말 인간은 무얼 해야 할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걱정이 커지기는 하지만, 사실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AI의 영향을 받아왔다고 하겠습니다. 컴퓨터의 도움에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세계적인 기관과 기업의 직원채용과 업무평가에서 AI는 이미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들을 해왔고, 요즘 같은 경기불황기에 기업의 합병이나 해고에 AI가 관여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습니다. 최근 다국적 기업 구글에서도 직원해고에 영혼 없는 알고리즘이 동원되었다는 말이 있어 구성원 일부가 동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서 감성을 전해 받지 못한 냉혹한 AI가 피도 눈물도 없이 인간을 평가하고 내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경이롭고 놀랍습니다. 예전에 꿈을 꾸지도 못했던 일, 꿈으로만 상상하고 영화에서나 봤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면서, 문명은 인간에게 새롭고 편리한 세계를 선사하고 차원이 다른 확장된 세계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문명의 뒤쪽에 초고도의 과학·기술이 점점 인간을 경쟁에서 압도하고 왜소하게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석형 AI를 통해 자료를 통합하고 정보를 획득하던 시대에서 이제 생성형 AI의 탁월한 활동을 통해, 앞으로 인간의 사고와 창의력이 송두리째 넘어가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입니다. 사고와 창의력을 기계에 일임하고 빈 통조림처럼 알맹이 없는 생명체의 존립이 인간의 일상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디스토피아의 삶이 현실화하는 것이니까요.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인간의 삶에 이바지하는 AI를 만들도록, 우리 인간도 부지런히 학습하고 디지털 문해력을 키워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걱정을 하는 대신, 인간과 상생하는 AI의 진화를 진정으로 기대하고 꿈꿔볼 때입니다. 시험 삼아서 AI에게 에세이 한 편 써달라고 부탁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저로서는 아직은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는군요.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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