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관점을 바꾸지 못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말했다. B는 태어남(birth), D는 죽음(death), C는 선택(choice)을 말한다. TV 드라마 ‘트롤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트롤리는 소수 혹은 다수를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지 묻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리주의(功利主義)’를 선택의 기준으로 본다. 공리주의는 19세기 이래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윤리 사상이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쾌락과 고통’이다. 쾌락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을 ‘선(善)’으로 여긴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삶을 선택해가면 한 개인이나 이 세상이 과연 좋아질까? 동양의 고전 대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나눠서 본다.
인심은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아(自我, ego)’가 있다. 이 자아의 마음이 인심이다. 이 자아는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본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도심은 도(道)의 마음이다. 천지자연의 원리, 이 원리를 아는 마음, 자기(自己, self)를 말한다.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심은 크게 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聖靈),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佛性),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로고스(logos), 공자가 말하는 본성(本性)과 같다.
이 도심은 천지자연의 마음이기에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지혜와 사랑이 가득한 마음, 우주만큼 큰마음이다. 그런데 공리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로 본다. 쾌락이 증대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인심만을 가진 존재, 자아중심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항상 자신의 쾌락, 이익을 중심에 놓고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면 과연 행복해질까? 명예, 재물, 권력 등은 쌓일지 몰라도 삶이 공허해진다. 권태가 오고 우울증이 오게 된다. 도심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니체는 말한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관점을 바꾸지 못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정신이 허약해지면, 우리는 서서히 죽음의 향기에 취하게 된다.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단지 쾌락의 동물로 보는 현대사회의 하늘에는 죽음의 잿빛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드라마 ‘트롤리’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매순간 지혜롭게 삶을 선택해간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된다. 현대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가 말했듯이,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약한 도심을 계발하고 깨워가야 한다. 도심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야 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주이상스(jouissance)’를 제안했다. 주이상스는 ‘고통과 함께 있는 희열’을 말한다. 등산가는 고통스럽게 산을 오르고, 예술가는 고통스럽게 작품을 창조한다. 이때 느끼는 마음이 주이상스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할 때, 자신의 삶을 창조해 갈 때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우리가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쾌락의 크기만큼 불쾌가 오게 된다. 불쾌를 견딜 수 없어 더 큰 쾌락을 찾게 된다. 점점 변태가 되어간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답게 스스로를 창조해가야 한다. 이때 온 몸이 활성화된다. 고통이 큰 만큼 기쁨도 크다. 우리는 도심, 내면의 신의 소리가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자신을 활짝 꽃 피워가야 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은 이렇게 살다간다. 그래서 다들 여한이 없어 보인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