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전철 타고 떠나는 봄날의 여행지 1

여계봉 선임기자

 

3월 하순과 4월은 그냥 집에 버티고 있기에는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봄 내음 가득 실린 햇살 가득한 야외를 걷으며 자유로운 자신을 느끼고 싶으면 훌쩍 수도권 전철을 타고 ″봄~ 내려오는″ 길로 떠나보자.

 

양평 물소리 길에 ″봄 내려온다″

 

경의 중앙선 양평역에 도착해서 강가로 나오면 양평 물소리 길에는 범이 아닌 봄이 내려오고 있다. 때는 꽃 봄이라 양평은 꽃물에 배어있다. 양평 물소리 길은 수도권 전철인 경의 중앙선의 양평 구간에 있는 역과 역을 이어 걷는 길이다. 6개 코스 모두 전철역에서 시작해 전철역에서 끝난다. 양평의 남한강과 북한강을 모티브로 2013년에 처음 개장해 현재는 57km, 양수리 역을 기점으로 6개 코스로 운영 중인데 수도권 주민이라면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전철을 이용해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남한강 물소리 길에 주렁주렁 매달린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간지럼을 태운다.

 

6개 코스 중 봄이 한창인 4월에 부담 없이 걷기 좋은 4코스를 추천한다. 양평 물소리길 4코스는 양평역에서 출발해 원덕역까지는 이어지는 길이다. 4월이면 푸릇푸릇한 버드나무길과 끝도 없이 만개한 벚꽃과 남한강, 흑천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양평 물소리길 4코스(버드나무나루께길, 10.4km 3시간 30분 소요), 양평군청 제공

 

양평역에서 출발하여 강변의 자전거길을 따라 갈산체육공원에 들어선다. 갈산(葛山)은 양평의 옛 지명으로, 칡이 많아 칡미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갈산공원에서 강가로 내려서니 남한강 옆으로 버드나무나루께길의 강변길이 기다린다. 버드나무나루께길은 이름부터 무척이나 정겹다. 

 

나루께는 나루터라는 의미, 즉 버드나무 나루터가 있는 길을 따라 버드나무들이 드리워진 그늘 아래 바람을 즐기며 흙길을 걷는다. 4코스의 반은 남한강을, 반은 남한강 지류인 흑천의 물길을 따라 걷는다. 강가의 버드나무는 흐드러지게 춤을 추고 길은 흙길이라 푹신해서 자박자박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남한강을 품고 있는 양평은 칡이 많아 갈산(葛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춤추는 버드나무를 벗 삼아 길을 걷다 보니 배다리가 나온다. 근처에는 나룻배도 있고 그네도 있다. 초록의 장막을 친 강변 숲 사이로 보이는 당실당실 몇 점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봄날의 설렘은 남한강의 도도한 물길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드나무를 동무 삼아 걷다 보면 영혼까지 자유로워진다. 

 

버드나무나루께길이 끝나는 길에서 자전거도로로 올라선다. 갈산공원을 지나며 줄 서 있는 벚나무 행렬은 현덕교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벚꽃이 만개한 시골길을 동무들과 함께 걸으니 발걸음이 더욱 신이 난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익어가는 잎사귀들, 산과 들에 뿌리박은 초목들은 저마다 초록을 가득 머금은 채 득의양양하다. 초록의 대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자연의 소리는 마음마저 깨끗하게 한다. 

 

 현덕교에 올라서면 흑천을 따라 같이 흘러가는 벚나무길이 보인다. 

 

남한강과 작별하고 현덕교에 올라서면 흑천을 만난다. 현덕교를 지나면 흑천 따라 벚나무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길에 하얀 꽃잎이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니 흑천의 강바람이 오히려 고맙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흑천의 물소리로 귀까지 즐거우니 물소리길은 낭만이 가득하다. 꽃들의 보시, 향기의 보시...이 길을 걷는 이들은 과분한 호사를 누린다.

 

흑천 강바람에 꽃비 맞으며 걷는 이 길은 피안으로 가는 길이다.

 

 

벚나무길이 끝나면 그 유명한 신내 해장국 거리가 나온다. 흑천교 옆으로 난 거무내길을 따라가면 대형 리조트가 나오고 잘 다듬어진 길을 걷다가 강으로 난 쉼터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가도 좋다. 리조트로 난 거무내길이 끝나면 시골 마을 길이 나온다. 소박한 시골집에서는 가족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낮은 담 너머로 새어 나온다. 구수한 삶이 있는 길을 지나서 원덕역에 도착하면서 4코스가 끝난다. 

 

거무내길 너머로 추읍산이 고개 내밀고 수고했노라 인사(揖)한다. 

 

양평 물소리 길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단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길이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봄의 전령 산수유를 찾아서 떠나는 양평 추읍산>

 

경기도 양평의 추읍산(趨揖山, 582m)은 용문면과 개군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은 인근 용문산의 유명세에 밀려 양평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으나, 경의 중앙선 원덕역이 생기면서 이제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 되었다. 

 

추읍산이란 이름은 북쪽 흑천 건너 용문산을 향해 인사(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그리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추읍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데, 북쪽의 양평과 용문 방면에서 보면 지붕 용마루처럼 보이고, 남쪽의 내리나 주읍리 방면에 보면 둥근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 둥글게 솟아오른 모양이다.

 

개금면 내리에서 바라본 추읍산. 둥그런 돔 형태가 마치 임산부의 배처럼 보인다. 

 

추읍산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산행 대상지지만 봄철 산수유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산 남쪽의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산수유(山茱萸) 나무 약 1만 5,000주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하다. 매년 4월 초 ‘양평 산수유·한우축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곳인데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몇 년째 중단되다가 올해는 4월 1일부터 4월 2일까지 내리 주읍리 향리 마을에서 열릴 예정이다. 

 

추읍산 산행은 대개 원덕역을 기점으로 한다. 역에서 흑천을 건너 두레마을을 들머리로 북서릉을 오르는 1코스(약 3.5km, 2시간 20분)와 산 북쪽인 용문면 삼성1리 경로당을 들머리로 북릉으로 오르는 2코스(약 4.5km, 2시간 20분), 남쪽 개군면 주읍리에서 남동릉이나 남릉을 오르는 3코스(약 2.5km, 1시간 30분), 남서쪽 내리에서 삼림욕장을 거쳐 남서릉으로 오르는 4코스(약 2.9km, 2시간)가 있다. 산수유가 많이 피는 3월 말과 4월 초에는 원덕역에서 출발하여 흑천을 지나 1코스로 정상에 오른 후 내리마을로 하산하는 4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원덕역 1번 출구에서 오른쪽 차도를 따라가면 비닐하우스가 좌우로 펼쳐진 너른 벌판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선다. 상쾌한 봄 내음을 맞으면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녘을 걷는다. 논두렁에는 초록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경운기와 트랙터는 들판을 질주한다. 서두름 없이 흘러가는 들녘의 봄 풍경들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논밭이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길을 따라 양평 물소리길 이정표를 따라가면 흑천이 나온다. 강변길 왼쪽으로 용문산 줄기, 오른쪽으로는 추읍산이 보이고 그 사이로 흑천이 유유히 흐른다. 

 

강변 벚나무의 낙화를 품에 안고 흑천이 흐른다. 

 

흑천은 천변 바닥의 검은 돌 때문에 물빛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흑천을 ‘거무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추읍산 가는 길은 수더분하고 풋풋한 시골길과 따스한 강바람이 얼굴을 매만져 주는 강변길로 이어져있는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산객을 따듯하게 반기고 있다. 이 강변길은 송강 정철 선생도 걸었다. 선생은 <관동별곡>에서 ‘말을 갈아타고 흑수로 들어가니 섬강이 어디더냐. 치악이 여기로다’라고 썼는데, 흑수(黑水)는 양평군의 흑천을 의미한다. 

 

흑천에 놓인 이 다리를 건너면 추읍산 1코스 입구가 나온다. 

 

흑천을 건너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데 초입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전망 좋은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백운봉과 용문산이 나란히 조망된다. 쉼터 오른쪽 갈림길은 내리마을 방향 삼림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쉼터에서 계속 된비알인 지능선을 오르면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가 나오고 더 올라가면 주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 번 더 치고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서 추읍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강기맥이 두물머리까지 긴 산줄기를 이어오면서 양평의 중앙에는 용문산이 크게 자리를 잡았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추읍산 정상은 사방 막힘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부터 남쪽까지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용문산이 마주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고래산이 마주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원적산, 천덕봉, 앵자봉 등이 조망된다. 멀리 이천이나 광주 쪽에서도 추읍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올라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면 올라올 때 만난 주 능선의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산수유가 한창인 내리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내려오면 산림욕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편안한 숲길을 따라 계속 내려오면 임도를 만나고 이어서 산신각이 나온다. 산수유는 이곳 산신각부터 내리마을 입구까지 약 2km가량 이어진다.

 

산신각에서 내리마을까지는 캔버스 위를 산수유로 가득 채운 한 폭의 수채화다.

 

추읍산 자락 아직도 시골냄새 나는 내리마을에는 수령이 20년에서 200여 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가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7,000여 그루가 있어 산수유 꽃이 마치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시골 냄새 진한 이곳은 따뜻한 봄볕에 자녀들과 추억 쌓기에 좋다.

 

마을에 들어서면 낮은 돌담길 너머 노란 꽃물결이 나그네를 유혹한다. 

 

산수유 마을 내리 길가 양옆에는 본격적인 봄의 성찬 앞에서 조금은 가슴이 설레는 듯 노랗디노란 산수유나무들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온 동네를 가득 채운 노란 셔츠 입은 화사한 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꽃이 내뿜는 진한 노란색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되어 다가온다. 

 

마을로 내려서니 활짝 핀 산수유 사이로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경쟁하듯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누구라도 꽃을 보면 닫혔던 마음이 꽃잎처럼 저절로 열린다. 꽃 이름을 모르면 어떠리. 태초에 무슨 이름이 있었더냐. 이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의 그림자일 뿐.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도 봄을 찾아 떠나지 않겠는가?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3.15 01:46 수정 2023.03.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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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