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전철 타고 떠나는 봄날의 여행지 4

여계봉 선임기자

 

내(川)를 건너고 고개(岾)를 넘는 용문산 은행나무 물소리길

 

양평 물소리길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초록의 대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준다. 단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길이다. 

 

양평 물소리길 마지막 코스인 6코스가 끝나는 곳에 양평의 자랑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다. 그래서 이 길을 용문산 은행나무길이라고 부른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용문사를 향해 걸었던 것처럼 하천길과 산길을 뚜벅뚜벅 걸어 천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만나러 간다. 

 

양평 물소리길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용문사

 

총 6코스 56km로 이루어진 양평 물소리길의 6코스 구간은 거리 10.7km, 소요시간 3시간이다. 남한강 지류인 흑천을 따라 마을 길을 지나고 작은 산을 두 번 넘는 길이다. 내를 건너 동네를 지나고 산을 넘으면 용문사가 나온다.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안내도(양평군청 제공)

 

용문산 은행나무길은 용문역 3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전철역 부근의 공사 현장을 지나 안내판을 따라 흑천을 따라 올라간다. 물소리길 안내판을 따라 강변길을 걸으면 장대1길 벚나무 터널이 나온다. 길가에는 지방 관리들의 불망비와 선정비가 서 있는데 그 내용인즉 당시 지역의 백성들이 수령들의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당시 어정잡이 벼슬아치들이 백성들에게 자신의 치적을 과장해서 적은 비를 세워줄 것을 강요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와 그 폐해가 너무 심해 정약용 선생은 선정비 폐지를 주장하기까지에 이른다.

 

남한강 지류 흑천. 하천 바닥의 돌이 검은색이어서 물빛이 검게 보인다.

 

길가에 ‘다문6리’라는 큰 빗돌이 서 있는 지평의 장대마을은 중앙선이 개통되기 이전에는 시장과 주막으로 번창하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 흑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화전교가 나온다. 용문생활체육공원과 마룡1리, 2리를 지나면 덕촌2리 퇴촌마을 다리 아래로 용문천이 흐르는 용소교가 나온다. 소나무가 우거진 절벽 아래로 흐르는 하천은 바라만 보아도 시원하다. 여유가 있다면 잠시 돌다리에 앉아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용소교 아래의 징검다리로 건너면 더 낭만적이다.  

 

용소에서 도로로 올라와 조금 걸으면 도로 왼편으로 ‘평양조씨세장동구(平壤趙氏世藏洞口)’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세장지란 조상 대대로 묘를 쓰는 곳으로, ‘세장동구’란 이러한 땅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를 의미하는데, 이곳 출신 조욱 선생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감췄다’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위에 글을 남겼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조욱 선생이 바위에 남긴 ‘평양조씨세장동구(平壤趙氏世藏洞口)’

 

덕촌길을 따라 걸음을 계속하여 다리를 건너면 연당(蓮塘)과 세심정(洗心亭)이 나온다. 조선 중종·명종 때의 학자이며 정암 조광조의 수제자로 이름 높은 우암 조욱(趙昱) 선생이 기묘사화의 화를 피해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유서 깊은 정자다. 스스로 당호(堂號)를 세심당이라 하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를 용문(龍門)선생이라 불렀다. 

 

연못인 연당과 6각 원당 모양의 정자 세심정 

 

세심정에서 나와 산길로 접어드니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이 참 정겹다. 무성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걸러 주니 그늘이 시원하다. 바람이 내 곁에 머문다. 한낮의 따가운 봄 햇살은 무성한 숲속에서는 부드럽고 향기롭게 걸러진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예전에 산판차가 다니던 임도를 따라 계속 가면 덕촌길 고갯마루에 올라서고 물소리길 6코스 인증 스탬프를 찍는 장소가 나온다. 

 

덕촌 고개에서 만난 금낭화 

 

오촌리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산자락을 푸른 보자기처럼 덮고 있는 용문산과 중원산이 형제처럼 서 있다. 양쪽으로 나란히 선 형과 아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노라 하며 미소를 보낸다. 마을로 들어서니 오래된 한옥 고가가 눈에 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의 격식을 갖춘 사대부가의 가옥 구조 모습이다.

 

□자 형의 김병호 고가. 조선 말기인 고종 때 지어진 한옥이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숲길을 산책하듯 걷다 보면 이내 작은 고갯마루를 넘어선다. 큰 도로로 내려오면 ‘경기제일용문산’이라고 현판을 단 큰 대문이 나오고 이 문을 지나면 용문산 관광지로 들어간다. 

 

식당이 밀집해 있는 관광지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면 넓은 광장과 공원이 나오고 용문산과 용문사로 가는 계곡 길이 이어진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 연등 다는 작업으로 도로 옆은 분주하다. 산사 가는 길은 신록이 꽃처럼 눈길을 잡는다. 꽃은 화려하여 혼이 달아날 것 같은데 신록은 담백하나 혼이 스며있는 빛깔이어서 절집에는 신록이 더 어울린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20분 정도 올라가니 계곡 길의 끝에 하늘 가린 나무들의 차양이 물러나며 동트듯 산기슭이 훤해지는데, 거기 청명한 둔덕에 용문사가 있다. 

 

절집 본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키는 42m, 둘레는 15m가 넘는 은행나무가 마치 절을 수호하듯 당당히 서 있다. 수령이 1,100년이 훨씬 넘는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용문사 은행나무 나이는 용문사의 창건 시기가 대략 비슷하다. 

 

주변에 서 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진하다. 절집에 드니 티끌 번뇌는 흩어지고 맑은 생각이 피어난다. 절집 마당의 연등은 사월초파일을 기다리고 있고, 절 마당에 핀 철쭉은 오늘따라 유난히 붉고 곱다. 

 

용문사는 신라 시대인 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절집을 벗어나 오른쪽 숲으로 드니 나무 그림자가 서늘한 숲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청아하다. 솔 향기는 비등하고 촉감 좋게 다져진 흙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잠시 후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 부도와 정지국사탑비를 만난다. 

 

정지국사 부도. 이곳으로 오는 길에는 산사 찾는 감칠맛이 넘친다. 

 

산사를 올랐다 내려오는 발길이 가볍다. 절 골짜기에는 가슴이 후련하도록 넓은 바위에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속에 손이라도 담그면 속세에서 묻혀온 이 사람의 업보가 한 방울 떨구어진 먹물이 퍼지듯 그렇게 표시가 날까 봐 감히 손을 담그기가 주춤거려질 지경이다. 

 

양평 물소리길 6코스를 걸으며 살갗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흑천의 바람, 작은 숲에서 풍겨 나오는 신록의 향긋함, 그리고 용문사의 은행나무 잎새를 헤집고 들어오는 봄 햇살의 짜릿함을 즐긴 덕분에 지친 마음에 은은한 쉼표를 찍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4.03 12:57 수정 2023.04.0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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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