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김삿갓)은 향시鄕試에 당당히 장원급제를 하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 이제 제가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향시에 합격을 했으니 저도 출세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래. 시험문제가 무엇이더냐?”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병연은 이렇게 적었다고 말했다.
‘선대왕이 보고 계시니 넌 구천에도 못가며,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라. 네 치욕은 우리 동국역사에 길이 웃음거리로 남으리라.’
어머니는 김병연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익순은 김병연의 친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얄궂은 운명이 또 있을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선천 부사로 있던 김익순은 반란군을 진압하려 하지도 않았고 반란군에게 항복하고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무사로써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겁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후 김익순은 사형당했고 가족 몰살은 면하고 폐족되었다. 김병연은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줄도 몰랐고 가족들도 김병연이 5살 때의 일이었으니 일체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향시 장원급제 후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자신은 조상을 욕한 패륜아라 자책하며 과거시험도 포기하고 하늘 보기 부끄럽다며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며 시를 썼다. 그는 뛰어난 문장력을 갖고 있었기에 과거시험에 응시했다면 장원급제도 기대해 볼 만한 인재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욕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상님께 욕을 해서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깊은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만든 사건의 주역으로 지목되는 사람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욕하는 일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학살자입니다.”
이 사건은 전문 학자들과 역사가들이 정리를 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안이다. 일설에 의하면 마약중독과 우울증에 빠져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손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요즈음 아무리 세상의 윤리관이 파괴되었다고 한들 조상님께 어찌 침을 뱉으랴!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이슈가 되어 민감한 정서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할아버지의 검은 돈이 얼마가 있다느니 남은 가족들은 그 돈으로 호화생활을 한다는 등의 가족사를 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손자는 무슨 자격으로 그 현장에 가서 유족들에게 사과했다는 것인지 더욱 이상하다. 자신은 당사자도 아니지만, 굳이 진정으로 사죄하고 싶다면 삿갓이라도 쓰고 하늘을 가리고 맑은 정신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