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이순신의 시를 가장 아름답게 국역한 홍기문

이봉수

이순신 장군은 많은 한시를 남겼다. 한시는 한글로 번역하면 번역자에 따라 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한 사람은 홍기문이 아닌가 한다. 홍기문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야음 閑山島夜吟' 시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한산도야음 閑山島夜吟

 

수국추광모 水國秋光暮

경한안진고 驚寒雁陣高

우심전전야 憂心輾轉夜

잔월조궁도 殘月照弓刀

한산도의 밤

 

물나라 가을 빛이 어느듯 저물에라

높이 뜬 기러기떼 추위에 놀랐고나

근심에 잠 못 이뤄 이리저리 뒤척일 때

지새는 저 달빛이 활과 칼을 비취여라.

이순신과 함께 함경도에서 초급장교 생활을 했던 선거이는 임진왜란이 나자 남해에서 왜군과 싸웠다. 어느 날 선거이가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발령이 나자, 이순신은 석별의 정을 '증별선수사거이 贈別宣水使居怡'라는 시로 남겼다. 이 시를 홍기문은 이렇게 번역했다.

증별선수사거이 贈別宣水使居怡

 

북거동근고 北去同勤苦

남래공사생 南來共死生

일배금야월 一杯今夜月

명일별리정 明日別離情 

선수사(충청수사 선거이)를 보내며

 

북에서 서로 만나 고생을 함께 하고

남으로 내려와서 생사를 같이 했네

오늘 밤 달빛 아래 술 한 잔 잡읍시다

밝은 날 떠나간 후 그리움 어이하리

선거이(1550-1598)는 이순신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선거이가 함경도에서 근무할 당시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에 맞서 싸웠다. 조산보 만호였던 이순신이 1587년 여진족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1차 백의종군할 때 함경도 북병사 이일의 군관이었던 선거이는 술을 권하면서 억울한 이순신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거이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진도군수로서 1592년 한산대첩에 참전하여 이순신과 함께 싸워 승리했다. 그 후 충청수사가 된 선거이가 황해병사로 발령 나자, 1595년 9월 한산도 진중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며 이순신은 이 시를 지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번역했지만, 홍기문의 번역이 가장 빼어난 우리말 번역으로 평가된다. 

홍기문은 이순신 장군의 ‘진중음’ 시 중에서 칼에 새긴 검명(劍銘)은 이렇게 번역했다.​

 

검명 劍銘

 

서해어룡동 誓海魚龍動

맹산초목지 盟山草木知

칼에 새긴 글

 

바다 향해 다짐 두니 어룡이 꿈틀

산 두고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 듯

한시를 국역한다는 것은 한문을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잘 못 번역하면 번역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 홍기문은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한글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문학자임이 틀림없다. 난중일기도 노산 이은상보다 먼저 번역한 사람이 홍기문이다.

북한의 국문학자 홍기문은 1903년 충청북도 괴산에서 태어났으나 ‘임꺽정’을 쓴 그의 아버지 홍명희를 따라 월북했다. 홍기문의 아들 홍석중은 장편소설 '황진이'를 써서 남과 북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황진이’로 우리나라에서 2004년에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혼이 깃든 문화의 총체다. 그래서 한문을 국역할 때 가장 아름답고 쉽고 친근한 우리말로 풀어 쓰는 것이 중요하다. 홍기문이 국역한 이순신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https://yisoonsin.modoo.at

 

작성 2023.04.04 12:03 수정 2023.04.0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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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