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처음처럼

고석근

그대들은 벌레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되는 길을 걸어왔으나, 아직 그대들은 많은 점에서 벌레다. 그대들은 예전에는 원숭이였고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도 더한 원숭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경허 선사는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9살의 어린 나이에 의왕 청계사로 출가했다. 그 뒤 14살에 계룡산 만화 강백 문하에서 불경과 여러 동양 사상을 두루 섭렵하고 23세에 계룡산 동학사 강사로 추대되었다.

 

그 후 그는 8년 동안 전국에서 몰려든 스님들에게 불경을 강의하며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31세 때 환속한 스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른 한 마을에서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려 들른 그 마을에서는 다들 문을 열어주지 않고 얼른 떠나라고만 했다. 그는 그 마을에 콜레라가 휩쓸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꼬박 밤을 새우게 되었다.

 

죽음을 모르는 아이는 마냥 행복하다. 그러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죽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사형수가 된다. 죽을 날을 받아 둔 인간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 앞에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게 된다.

 

경허 선사는 아침이 되자 다시 동학사로 되돌아가 목숨을 건 수행을 하게 된다. 죽음은 목숨을 걸어야 해결될 수 있다. 사즉생(死卽生), 죽고자 하면 살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최근에 먹은 음식들이 내 몸의 세포가 되어가고 기존의 세포들은 죽어가고 있다. 나는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크게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죽음이 내게 왔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고, 온몸에서 땀이 물 흐르듯 흘러내리고, 팔다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옆에 자는 아내를 깨울까 말까를 잠시 고민했다. ‘죽어가는 남편을 보게 할 수는 없어!’ 나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침에 깨어나니 그때서야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의 공포는 ‘생각’이다. 죽음이 임박해 생각이 희미하게 되면 죽음의 공포도 희미하게 된다. 나는 그때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확연히 알게 되었다. 마음이 풀려버리면 우리의 존재도 풀려버리게 된다.  

 

생각이 멈추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삶도 죽음도 없다. 시간도 멈춘다. 오롯이 깨어 있는 ‘나’가 있을 뿐이다. 나는 오롯이 ‘영원한 현재’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절에 머물렀다. 알고 싶었다. ‘삶과 죽음의 비의’를.

 

하지만 목숨을 건 수행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크게 아프게 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되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하다 그런 경험을 했다면 나는 그 경지를 더 밀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얻은 경지가 아니었기에, 다시 나는 무지몽매한 중생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무지몽매한 중생이지만, 그때 맛본 ‘진여(眞如)의 세계’는 나를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했다. 

 

니체는 말한다. 

 

“그대들은 벌레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되는 길을 걸어왔으나, 아직 그대들은 많은 점에서 벌레다. 그대들은 예전에는 원숭이였고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도 더한 원숭이다.” 

 

모든 생명체는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생각 여하에 따라 생명체의 본능을 배반할 수 있다. 인간이 원숭이로 벌레로 퇴화하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벌레로 원숭이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편안한가!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는 말했다.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순간 이미 깨달음은 성취되었다”

 

경허 선사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삶과 죽음의 비의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 처음의 마음은 생사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무의식에서 알고 있었기에 그 앎을 의식화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이는 배우지 않아도 이미 ‘부처, 깨달은 자’다. 그러다 언어를 배우면서, 언어로 생각하게 되면서, 처음의 마음을 잃어간다. 우리가 처음처럼 살아갈 수 있으려면, 아이의 마음을 다시 깨워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음을 내려놓기만 하면, 우리는 천지자연과 조응하게 된다. 

 

공자는 말했다.

 

“분발하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

 

경허 선사처럼 온갖 지식을 다 내려놓고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하게 되면, 누구나 마음이 처음처럼 될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은 ‘자선병원 하얀 병실에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자선병원 하얀 병실에서

아침 일찍 깨어

지빠귀의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나에게서

죽음이 공포는 사라졌다.

 

아침 일찍 깨어난 시인의 귀에 무심코 들려온 지빠귀의 노랫소리, 불교에서 말하는 여래(如來)다. 여래는 글자 그대로 ‘오고 간다’는 뜻이다. 천지자연은 그냥 오고 가는 것이다. 한없는 떨림이다. 시인은 ‘자선병원 하얀 병실에서’ 어느 순간, 다 내려놓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냥 오고 가는 새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텅 비게 되면, 자연스레 우리는 천지자연과 하나가 된다. 태초의 마음이 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4.06 11:11 수정 2023.04.06 11:1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