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겨울날 아침나절에 흙마당에 비친 작은 푸름을 보고 신기해하다가 엎드린 나의 등을 지나서 땅을 스치는 기러기 떼를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낮게 날아가는 기러기 가족들의 그림자였다. 나의 등에서 내린 그림자는 땅을 스치곤 이어서 작은 시내를 건너 산속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는 어시장(魚市場) 빨간대야 안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지느러미를 보았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삶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행운이다.
어제까지 봄비가 내렸다. 사나흘 흩날린 비는 글자 그대로 꽃비(花雨)다. 세상의 만물들이 깨어나고 있는데 봄비까지 내려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 꽃비는 어디에서 왔을까? 안개날개를 달고 반투명 옷을 입고는 춤추면서 내리는 꽃비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속세의 시멘트 바닥에 내려꽂히고는 다시 튀어 오른다. 마치 춤을 추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려는 형상이다. 우리가 기분 좋을 때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쳐다보듯. 희망일까, 소망일까? 일부는 수증기가 되어 다시 오를 것이고, 또 일부는 어느 작은 나무 결 속에 스며서 기다리다가 언젠가는 하늘로 오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점(點)은 선(線)이 되고, 삶에 있어서도 찰나의 시간과 실패와 숨소리가 모여 그의 인생이 된다. 그러니 발걸음도 쉽게 걸을 것이 아니다. 찰나의 시간도 정성을 다하여야 하고 정성에는 몰입이 전제되어야 한다. 찰나와 몰입은 어떤 관계일까? 가끔은 나 자신을 잊게 하거나 나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하는 몰입을 발견한다. 물론 몰입의 시간 안에는 수많은 찰나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겨우내 굳어있던 땅을 파서 밭으로 만든다. 괭이와 나와 땅만이 오롯이 있고 봄 하늘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오후는 단순하다.
땅을 일구고 퇴비와 씨앗을 뿌리면 따뜻한 기운을 받은 새싹이 꼬물거리며 흙을 뚫고 올라올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잡초를 뽑고 땀을 훔칠 것이다. 땅과 새싹과 나의 몰입인 것이다. 삶은 연습이 없기에 서툴고 거칠고 때로는 투박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혼란스럽게 서툰 철학을 가져다 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연히 올라오는 나름의 피어남을 보면서 또는 작은 깨우침을 발견하면서 무릎을 탁 치는 기쁨을 맛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몰입에서 깨어날 때 엄청난 찰나들을 느끼며 커다란 고마움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햇빛싸라기들을 등짝에 통째로 받으며 건너편 과수원 아래 엎드려 쑥 캐는 여인을 본다. 그녀의 등에도 햇빛싸라기가 황홀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나도 혼자 괭이질하고 여인도 혼자 쑥을 캐고 햇빛싸라기도 혼자 내린다. 혼자 해보는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그래도 세상천지가 연결되어 있으니 동행의 기쁨에야 비하겠는가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시구(詩句)처럼 무엇이든 혼자 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지치기를 경계하는 감나무의 어린 가지가 숨는다. 가지 끝에 낮달이 달려있다. 각자가 찰나에 있고 자신들의 행로(行路)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찰나가 몰입과 이웃되고 점들이 선이 된다. 내가 우리가 되는 것처럼 종국적으로는 연결되어 상호의존적인 삶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그 연결되는 때가 있을지니 그 시간도 나에게 반드시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온 지도 모른다. 모르고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이니, 행복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이 행복이다 생각하면 행복이다. 찰나와 몰입이 하나인 것처럼.
몰입은 단순한 곳이나 땅을 파고 책 읽을 때 등 어디든지 내가 있는 곳에는 다 있다. 거꾸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괭이질을 하다가 허리 한 번 펴니 복사꽃이 웃으며 나를 몰입시킨다. 기쁨의 찰나들이 몰입을 데려오고 그 몰입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덕(德)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봄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대로(大路)를 지나간다. 봄꽃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은 인생이다. 저 꽃들을 보라, 하얀 벚꽃과 붉은 연산홍이 이웃하여 만발하고 그 아래로 푸른 잎들이 두 손 벌리고 노래하고 있으니 이 또한 평온한 몰입이고 이것을 즐기는 우리들 촌각의 찰나들이 곧 축복이고 기적이 아니겠는가.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